▲ 칠천도
칠천도는 조선시대 임진전쟁 이후에 유명해진 섬이다. 임진전쟁 중 칠천량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시기는 전쟁이 일어난 임진년 7월 9일이다. 이날 우리나라 수군은 가덕도 해상으로 이동하다가, 왜선 42척이 안골포(진해시 안골동)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날이 저물어 거제도 칠천량(온천량이라고도 전함, 거제시 하청면과 장목면)에서 하루를 보낸다. 이순신의 ‘난중일기’에 장목면의 장목진객사에서 안골포해전을 협의하였다는 기록이 나오고 있다. 다음날 벌어진 안골포해전에서 250명의 왜군이 죽고, 그들의 전선은 대부분 파괴되었다.

어떤 역사학자들은 안골포와 한산도해전을 묶어서 한산대첩이라고 하는데, 이 대첩으로 인하여 바다의 제해권은 조선 수군이 완전히 장악하게 된다. 그로부터 5년 후인 1597년 7월에 우리나라 수군은 전쟁 중 유일한 패전을 칠천량에서 당하게 된다.
 
이순신에 이어 수군통제사가 된 원균은 종사관 남이공과 함께 백여 척의 전선을 이끌고 한산도를 출발하여 진해의 안골포를 공격하여 승리를 하게 된다.

그러나 가덕도에서 6백여척으로 이루어진 왜군의 주력부대를 만나 크게 패하는데, 배를 수리하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 칠천량에 정박하게 된다.

그러나 전략적으로 불리한 칠천량에서 협공당한 우리 수군은 다음날  새벽 왜군의 수륙양군 합동 기습으로 크게 패하게 된다.

이 싸움으로 전라우수사 이억기, 충청수사 최호, 수군통제사 원균이 전사한다. 이 해전의 패배로 남해 일원의 제해권은 왜군에게 넘어가게 된다. 임진전쟁 중 영광과 슬픔을 동시에 안겨 주었던 칠천량! 지금도 칠천량은 말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 칠천량
섬에 옻나무가 많고 바다가 맑고 고요하여 칠천(漆川)도라 부르다가 이후에 강이 7개가 있다고 하여 칠천(七川)도가 되었다. 구전에 의하면 섬 밖에서 보면 그 수가 7천 개나 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여 칠천도라고도 한다.

거제도에서 가장 큰 부속섬인 칠천도 여행의 시작은 칠천연육교가 시작되는 하청면 실전리에서 시작된다.칠천도는 섬의 중심에 옥녀봉이 위치하고, 연구리와 어온리 및 대곡리 등 세 개의 법정리로 이뤄져 있다.

실전리와 어온리 장안마을 사이에 칠천연륙교가 설치되어 있고, 장안마을에서 시작된 해안도로는 약 13킬로미터를 돌아 다시 원 위치로 돌아오게 된다. 장안마을은 바다로 툭 튀어나온 곶에 위치하는데, 예전에는 장곶마을로 불렸으며, 실전리와는 430미터 거리에 위치한다.

장안마을 지나면 칠천출장소가 위치한 옥계마을이 나타나는데, 서남쪽으로 뻗은 땅끝의 모양이 비녀모양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 앞에는 씨름섬이 위치하고, 가까이의 금곡마을에는 칠천초등학교가 있다. 이 마을의 뒤편에 위치한 옥녀봉의 산줄기가 뻗어 내려 화전산을 이루고 있다. 이 화전산과 앵산에서 뻗어 내린 산줄기가 만든 천마산(덕곡광산)이 바다에서 가까이 만나 하청만을 감싸고 있다.

칠천도와 장목면 송진포 사이의 바다를 장목만이라고 하는데, 조선시대에는 장목만과 하청만을 합쳐 칠천량이라고 하였다.

▲ 황덕도
칠천도의 북쪽과 서쪽 바다는 진해만인데, 예전에는 넓다는 의미로 광이바다라고 하였다. 광이바다에 인접한 연구마을은 거북머리 모양으로 생긴 화전산의 줄기와 냉정산 줄기가 크게 감싸고 있다. 두 개의 거북머리가 연결되어 있어 연구마을이다.

연구마을을 지나면 한때 칠천도의 중심지 역할을 한 대곡리의 대곡마을을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는 칠천도의 부속도서 중 유일하게 사람이 살고 있는 황덕도를 갈 수 있다. 황덕도에는 갯벌이 발달되어 있어 여러 종류의 게를 만날 수 있다.

대곡마을에서는 북쪽으로 순환하는 도로와 물안마을로 바로 넘어가는 고개가 있다. 순환하는 도로를 따라가면 송포마을이 나오는데, 바닷물의 빠짐에 따라 육지로 연결되는 수야방도가 위치하고 있다.

송포마을에서 고개를 넘으면 어온리의 옆개해수욕장을 만나게 된다. 옆개 또는 마을의 이름을 따 물안해수욕장이라고도 하는데, 마사토와 황토가 섞여 이루어진 모래해수욕장이다.

▲ 물안(옆개)해수욕장
해수욕장 앞에는 바위로 이루어진 여(물 속에 잠겨 있는 바위, 암초)가 있는데, 도마모양이라 도매여라 부른다. 여가 있는 갯벌이라 여개가 되었다가 역개, 옆개로 변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해수욕장은 규모가 작아 가족 단위의 여행객들이 주로 찾고 있는데, 물 속에서 발가락을 이용하여 조개를 잡는 것은 매우 재미있는 일이다. 그리고 주변의 바다가 주로 모래로 이루어져 있어 도다리, 보리멸 등이 낚시로 많이 잡힌다.

해수욕장 가까이에 위치한 물안마을의 의미는 물안갯펄 즉 물안개이다. 이는 장목면을 기점으로 하면 물 안쪽에 위치한 개라는 의미이다.

물안마을을 지나면 어온마을이 나타나는데, 이는 바닷가에 따뜻한 물이 나오는 우물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이 따뜻한 우물 때문에 한때는 칠천량을 온천량이라고 하였다.

어온마을을 지나면 여행이 시작된 처음의 위치인 장안마을이 나온다. 고려시대에는 목장을 두었고, 한때는 넓고 풍요로운 땅에 고구마를 심었던 칠천도! 지금은 주변의 갯벌에 많은 개조개와 굴을 키우고 있다.

삶의 풍요로움이 있는 칠천도의 아름다움은 뭉게구름 높게 떠 있는 광이바다와 어울려진 석양이다. 차를 몰고 섬을 한바퀴 도는 데는 한 시간이면 충분하지만, 중간 중간에 차를 세우고 해변에 내려가면 갯완두, 나문재, 수송나물, 번행초, 갯메꽃 등의 바닷가식물을 만날 수 있다.

요즈음에 와서는 마라톤을 즐기는 사람들이 찾아와 장안마을에 차를 세우고, 섬을 한바퀴 도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임진전쟁 중 우리에게 큰 아픔을 주었던 칠천량! 후손들에게 다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내용이 기록된 안내판 하나라도 설치되어야 하지 않을까?

전쟁의 대부분(옥포, 한산도, 율포, 안골포, 당포, 구영, 부산포)이 거제도와 연관되어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의 머리 속엔 거제도하면 옥포해전만 기억된다는 것은 큰 아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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