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원 칼럼위원
그러나 숭유억불의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전통적인 제례절차는 사라지고 오늘날에는 유교식 절차로 대체되었으며, 단지 ‘차례’란 용어만 남아 전통의 흔적을 되돌아보게 하고 있습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무엇을 하던지 놀고 먹어서는 안 되고 자기가 노력을 해서 먹고 살도록 해야 됩니다.
경봉스님의 말씀을 몇 자 적어 봅니다.
무엇이던지 이치에 당해야 되지 이치에 안 당하면 안 된다. 부산에 있는 어느 집에서 쥐약을 쳤는데 그 쥐약을 먹은 쥐도 죽고 또 그 쥐를 먹은 고양이도 다 죽게 되어서 집 주인이 그것을 보고 그 고양이와 쥐를 위하여 ‘마하반야 바라밀다심경’ 이백 칠십 자를 읽는데 다 죽어가는 고양이가 주인 앞에 쫓아와 엎드려서 그 심경 읽는 소리를 다 듣고 숨을 거둔다.
소나 개나 말이나 이런 짐승에게 경을 읽으면 그것이 무슨 소리인지 모르지만 그것이 부처님의 진리법문이기 때문에 귀를 통해서 심장으로 들어가면 속이 시원해져서 가만히 듣고 있다.
서울 세검정에서 나무뿌리를 가지고 물건을 만들어 파는 사람이 며칠 전에 정신이상이 되어서 나에게 왔는데 왜 그러냐고 물으니까 내가 집안에 나무부리를 여러 개 파 두었더니 개미 수십만 마리가 집안을 하도 더럽혀서 그 개미를 휘발유를 뿌려 죽였더니 그로 인해 정신이상이 생겨서 왔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그것을 마음으로 참회하라고 했더니 요즈음은 병세가 좀 나아졌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 죽을지 모른다.
부처님이 여러 제자를 모아놓고 “인명이 어느 사이에 있느냐?”이렇게 물으니
한 제자가 “수일간에 있습니다” 이랬다.
사람이 살다가 수일간에 죽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부처님이 “너는 공부 못하겠다”그러고는
다른 제자에게 묻기를 “인명이 어느 사이에 있느냐?” 하니까 “밥 먹을 사이에 있습니다” 이랬다.
“너도 공부 못하겠다”며 또 물었다.
“인명이 어느 사이에 있느냐?”고 하자 한 제자가 이렇게 말했다.
“호흡지간에 있습니다” 숨 들이쉬고 내쉬는 사이에 있다는 말이다.
그러자 “너는 공부하겠다”고 부처님이 말했다.
이와 같이 사람의 목숨은 눈 깜짝할 순식간에 달려 있다.
불자들이 한마음으로 상생화합의 지혜의 길을 찾아 먼 길을 떠난다. 여름의 뜨거움도 새로운 계절엔 밀려가고 세월에 힘겨움을 항의 하려고 야단법석의 멍석을 깔고 종교 차별하는 위정자들에게 경고 메시지를 보낸다.
건국의 기틀을 세운 선열들과 민족의 흥망성쇠를 함께한 뿌리 깊은 불교 역사 앞에 종교화합을 염원하며 차별하는 마음에 삼창을 외쳐본다. 저들에게 혜안의 지혜를….
우리의 생명도 언젠가는 다시 시작 하고 계절은 다시 찾아오지 않는가. 절기는 얼마나 순수하고 정직하며 살아있는 생명체는 교훈이 되는가.
추석의 명절에는 더 음지가 많을 것이며 아름다운 소리와 아름다운 사회에 봉사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