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투리가 살아야 지역이 산다 ③] 청풍호 자드락길에서 만난 충청도 사투리의 여유
"이 길로 올라가셔야 수월하데유. 믿어봐유∼"
최근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의 '저출산·고령화에 의한 소멸 지역 분석' 연구서에 따르면 오는 2040년 우리나라에서 소멸이 예상되는 행정 지역 57개 중 지방이 80%를 차지하며, 특히 지역 언어문화와 지역어는 급격한 인구 감소와 함께 보존이 시급한 상태다. 이는 한때 우리나라 교육과정은 사투리 등 지역 언어는 틀린 말이자 쓰지 말아야 할 말로 취급해 학교 교육이 표준어 중심의 교육으로 진행된 후유증이기도 하다.
이런 과정을 겪으며 지역의 언어, 즉 사투리 문화는 소멸이 더욱 가속화됐으며 거제지역 사투리 문화도 다른 지방의 사투리와 마찬가지로 지방의 언어라는 이유로 표준어에 밀려 점점 사라져 가는 운명을 맞고 있다.
그러나 사투리는 그 지역 사람들이 살아온 자취와 흔적이며 다양한 삶의 사연은 물론 세월의 위엄이 새겨진 역사의 나이테 인만큼 지역 문화와 지역 정체성이 녹아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보존할 가치가 충분하다. 특히 지역 언어인 사투리는 한번 사라지면 영원히 대체 불가능한 천연자원으로 지역민이 나서 지역 언어의 권리를 찾고 지역사랑 및 지역 정체성을 살릴 필요가 있다.
이번 기획은 지역 문화와 지역 정체성이 녹아 있는 지역 언어문화 자료인 지역 사투리 활용 사례를 발굴해 지역문화를 보존하고 관광산업에 접목할 방법을 찾기 위한 여정이다. 이는 사투리가 살아야 지역이 살고, 지역 풀뿌리 언론이 바로 서야 우리나라 언론의 미래가 있다는 거제신문의 의지 이기도 하다. - 편집자 주
경상도와 전라도 사투리의 특징이 된소리 발음과 억양이라면 충청도 사투리는 느림과 능청스러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몇년 전 충청남도 공주시의 공주산성 전통시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시장 길가 자판에 햇밤을 파는 할머니와의 대화다.
"할머니 밤 얼마에요?"
"사는 놈이 알것쥬~ 파는 놈이 아나?"
"그럼 5000원이면 될까요?"
"냅둬유~, 집에 가서 돼지나 먹이게."
'그 가격엔 내 밤을 팔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던 일이 기억난다.
충청도 사람의 정서를 그대로 반영하는 충청말의 특징은 '비유'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인지 충청도 사투리는 개그 소재로 사용될 만큼 말에 속뜻이 다른 경우가 종종 있다.
대표적으로 '괜찮아유'라는 충청도 사투리는 개그 코너에서만 보면 '절대 괜찮지 않다'로 보이기도 한다.
충청도 사투리도 충북과 충남이 다르다고 알려졌지만 기자가 경험한 충청도 사투리는 '아부지 돌 굴러 가유~' 처럼 느리게만 느껴졌다.
일각에선 충청도가 예부터 고구려·신라·백제가 번갈아 차지했을 만큼 변화가 많았던 역사적 배경 때문에 상대의 의중을 파악할 때까지는 단정적으로 말하는 걸 피하는 습관이 DNA에 남은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특별할 곳 없는 평범한 등산로에 사투리를 이용한 콘텐츠로 이야기가 있는 자드락길에는 충청도 특유의 구수한 사투리가 힘든 등산길에 정겨움을 더하고 있었다.
취재를 떠나기 전까지 충청도 사투리는 경상도와 전라도 사투리에 비해 덜 알려진 데다 서울·경기지역과 가깝다 보니 '중부방언'으로 두루뭉술 묶여 특색이 없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청풍호 자드락길에서 만난 충청도 사투리 안내판은 충분히 이색적이면서도 정겹고 친절하기까지 했다.
"힘드셨지유? 조금만 가면 엄청 멋진 풍경나와유^^"
충청북도 제천시의 청풍호 자드락길 사투리 안내판을 취재하는 날은 하필이면 굵은 빗줄기가 연신 땅을 적시고 있었다.
제천시에 따르면 청풍호 자드락길 사투리 안내판이 설치된 것은 지난 2011년 12월이다. 예산이 얼마만큼 들어갔는지 제천시는 기록이 없다고 전했지만 설치된 안내판을 보면 그리 큰 예산을 들이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설치된 사투리 안내판의 아이디어와 제천시 청풍호 자드락길을 방문하는 시민과 방문객의 반응은 생각보다 더 좋았다. 나지막한 산기슭의 비탈진 땅에 난 좁은 길을 일컫는 청풍호 자드락길은 제천시 청풍호를 중심으로 모두 7개 구간에 걸쳐 조성돼 있다.
제1길인 작은동산길은 청풍면 '만남의 광장'에서 시작되는 19.7㎞ 길로, 지난 1985년 충주댐 건설로 인해 제천지역의 5개 면 61개 마을의 3031가구가 수몰된 곳에 만들어져 수몰 이주민의 애환을 담고 있다고 한다.
제2길인 정방사길은 청풍호 자드락길에서 가장 짧은 1.67㎞ 길로 능강교에서 신라 시대의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하는 정방사까지 코스로 정방사에서 보는 청풍호와 겹겹의 산세가 장관인 곳이다.
제3길인 얼음골생태길은 능강교 옆 능강계곡을 따라 얼음골까지 이르는 6㎞ 정도 길로 계곡과 울창한 숲길을 걷다 마지막에 만나는 얼음골은 한여름에도 얼음이 어는 빙혈(氷穴)이 있다고 알려졌다.
제4길인 녹색마을길은 능강교에서 출발해 하천리 산야초마을을 지나 상천 산수유마을에 있는 용담폭포에 이르는 7.4㎞ 느긋한 길로 청풍호자드락 길 중 가장 쉽게 걸을 수 있는 대중적인 길이다.
제5길인 옥순봉길은 상천리에서 송호리를 지나 '옥순봉'을 향해 옥순대교까지 걷는 5㎞ 정도의 코스로 종점에는 제천의 명소인 옥순봉과 출렁다리를 만날 수 있는 곳이지만 취재가 진행된 당일에는 우천으로 운행이 중단된 상태였다.
제6길인 괴곡성벽길은 옥순봉쉼터에서 시작해 괴곡리와 다불리를 지나 지곡리 고수골에 이르는 9.9㎞ 길로 자드락길 중 가장 경사가 심해 걷기 힘든 등산 코스였다.
제7길인 약초길은 지곡리 고수골에서 시작해 도전리, 서곡리, 율지리를 거쳐 다시 도전리로 돌아 산간마을을 한 바퀴 도는 8.9㎞로 약초길 전망대에선 청풍호·금수산·월악산의 풍광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하지만 청풍호 자드락길 7코스 모두 충청도 사투리 안내판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청풍호 다드락길의 사투리 안내판은 1구간 4개, 2구간 2개, 3구간 2개, 3구간 1개, 6구간 9개, 7구간 4개 정도만 설치돼 있어 보물찾기처럼 숨겨진 안내판을 찾아보는 재미도 솔솔하다.
취재 및 제천시에 문의해 찾은 청풍호 자드락길 사투리 안내판의 대표적인 문구는 △이제 시작해 볼까유 △이길로(이리로) (올라)가세유 △이길로 올라가셔야 수월하데유~ 믿어봐유 △내려가는 길이여유 △미끄럼 주의해유 △힘드셨지유? 조금만 가면 엄청 멋진 풍경나와유 △마당을 지나가도 좋아유 등이다.
제천시 관계자는 "청풍호 자드락길 사투리 안내판 설치 이후 시민·등산객이 충청도 특유 사투리로 구수함이 전해지는데다 친절함과 정겨움이 더해 좋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