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은혜 계룡수필문학회원

어린 날의 기억 속으로 빠져든다.

극성스럽게 달려드는 모기와 모깃불, 그리고 밤하늘의 별들이다. 어둠이 내리면 여지없이 이 세 가지는 친근하게 내 곁으로 찾아온다. 비 오는 밤이 아니면 이것들은 내 곁으로 모여와 씨름도 하고 이야기도 나눈다.

마르지 않은 풀에서는 특유의 풀 내와 연기가 흘러나온다. 연기는 이리 저리 바람난 여자의 엉덩이를 그리며 흔들고 다닌다. 연기는 모기를 쫓아내려 하지만 만만히 물러서지 않는다. 
낮 동안 덥혀진 마당에 멍석을 펼친다. 쾌쾌한 냄새가 난다. 싫지 않다. 그 냄새는 여름밤이면 우리 주변에 친숙하게 찾아와 함께 한다.

저녁이면 후텁지근한 방보다 마당에 깐 멍석이 제격이다. 멍석은 온 식구가 둘러 앉아 밥을 먹는 자리며, 삶은 옥수수와 감자를 가운데 놓고 낮 동안 벌어진 일들을 대책 없이 꺼내 놓을 수 있는 자리이며, 이슬이 내리는 새벽녘 까지 잠자리가 되어 주는 곳이기도 하다.

밤이 깊으면 빛이라곤 별빛뿐이다. 앉아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멍석위에 몸을 눕힌다. 얼굴은 하늘과 마주한다.

그러면 무수히 떠 있는 별들이 얼굴로 쏟아져 내린다. 길게 구름처럼 보이는 은하수. 그 은하의 물줄기에 가로 누워 있는 S자형 전갈자리가 내 눈을 잡아끈다.

저 별은 내 것이고, 또 저 별은 네 것이라는 유치한 말은 아니더라도 우리는 별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여름밤이면 견우와 직녀의 애달픈 사랑 이야기가 늘 우리 곁에 있었다.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일년 내내 그리워하다 단 하루 칠월칠석날 만나고 헤어진다는 두 별의 전설. 만남으로 반가움의 눈물인지, 다시 헤어짐으로 슬픔의 눈물인지, 내 어린 날의 기억에서는 그 날은 꼭 비가 내렸다.  

이곳으로 이사 온 후 둑길을 걸을 때가 많다. 운동 삼아 아파트 단지 내를 돌 때보다 한결 여유롭다. 들판을 가로지른 둑길, 노래하며 흐르는 시냇물, 그 곳에 터를 잡고 노니는 오리 떼. 이따금 날개를 치며 하늘을 오르는 백로. 

차가 다니지 않아 매연도 없다. 아스팔트길도 아니다. 울퉁불퉁 돌도 튀어 나와 있고, 움푹 팬 곳엔 물도 고여 있다. 그렇지만 난 이 길이 좋다. 내 고향 시골길을 걷는 것 같아서다. 풀벌레의 울음소리. 풀숲을 헤치고 일어서는 들풀 냄새.

그 여유로움 속에서 하늘을 자주 올려다본다. 예전의 초롱초롱하던 별빛들은 사라지고 희미해졌어도 하늘을 볼 수 있는 이 시간이 행복하다. 공해로 덮여 버린 하늘. 숨어 버린 별. 아쉬움에 찬 내 시야에 비행기의 불빛이 대신 꿈을 가지고 날아간다. 이 또한 둑길에서 만나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지금 내 곁엔 누워서 별을 헤던 가족도 친구도 없다. 모기를 몰아내던 모깃불도 없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내 가슴에 영원히 남아 있다. 별동별이 흰 선을 그으며 곤두박질칠 때 목청을 돋우어 소리치던 친구. 큰 별은 자기 것이라고 우겨대던 친구.

그 친구들은 아직도 내 가슴에 남아 숨쉬고 있다. 이 여름이 다 가기 전에 멍석을 펴고 하늘을 마주보며 별을 헤고 싶다.

모깃불이 없어 모기가 와서 물어대도, 같이 이야기할 친구가 없어도, 이 밤 나는 별을 헤고 싶다.  하룻밤쯤 그날을 그리며 모기에게 헌혈해도 괜찮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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