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흥남철수작전기념사업회 이인재 회장
보은의 자세로 거제시와 상생 방안 모색

(사)흥남철수작전기념사업회 이인재 회장. /사진= 김은아 기자
(사)흥남철수작전기념사업회 이인재 회장. /사진= 김은아 기자

"임진왜란과 한국전쟁사에서 거제시민이 보여준 애국심과 동포애는 세계 어느 민족도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자랑스러운 역사이기에 자부심을 가져도 됩니다.  지금은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는 상선 5척중 1척이 거제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에 자긍심을 가지고 전 세계에 거제시를 홍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흥남철수작전의 산증인인 (사)흥남철수작전기념사업회 이인재 회장은 거제시는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은혜의 고장이자 동시에 마음에 빚이 있는 애증의 도시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2005년 (사)흥남철수기념사업회가 만들어진 후 그동안 역사적 사실을 재정립하고 보은을 위한 여러 사업을 했지만 정작 거제시민들이 보여준 동포애에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은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며 "앞으로 장학사업 이외에도 직접 고마움을 전달할 수 있는 다양한 사업들을 모색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7일 창작 오페라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기적' 관람을 위해 거제시를 방문한 이인재 회장을 만나 흥남철수작전의 의의와 향후 사업계획을 들어봤다.

지난 8일 (사)흥남철수작전기념사업회 이인재 회장가 거제신문 김동성 대표이사가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 있는 흥남철수작전기념비 앞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김은아 기자
지난 8일 (사)흥남철수작전기념사업회 이인재 회장가 거제신문 김동성 대표이사가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 있는 흥남철수작전기념비 앞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김은아 기자

- 세계 전쟁사의 대표적인 휴먼스토리 중 하나로 기록된 흥남철수작전의 의미 및 거제시와 같이할 사업이 있다면.

= 흥남철수작전은 1945년 해방 이후 5년 동안 공산 독재체제의 폭정에 시달린 북한 주민들이 자유를 찾아 남하한 세기의 엑소더스이다. 이 사건이 인간존엄성을 보여준 사례로 역사의 한 페이지로 기록될 수 있기까지는 많은 사람의 도움이 있었다.

특히 크리스마스의 기적으로 알려진 빅토리호를 통해 1만4000명의 이향민을 태워준 미군의 인류애는 많이 알고 있지만 피난민을 받아들인 거제시민들의 숭고한 동포애는 홍보가 부족하다고 본다.

앞으로 거제시민들이 보여준 인도주의적 정신을 널리 알리는 일을 거제시와 협의, 상생할 수 있는 사업을 추진해나갈 생각이다. 장기적으로는 거제시와 함께 흥남철수작전일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하는 것과 단기적으로는 삶의 터전을 내어준 거제시민들의 고마움을 잊지 말자는 취지에서 거제에서 주먹밥 행사를 할 계획이다.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 있는 흥남철수작전기념비. /사진= 김은아 기자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 있는 흥남철수작전기념비. /사진= 김은아 기자

- 흥남철수작전의 성공은 희생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한다면?

= 흥남철수작전의 역사적 의미는 피난을 결심한 북한 주민을 모른체 하지 않고 인도주의적 정신을 실천한 미군과 거제시민의 따뜻한 동포애라고 생각한다. 이분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이 없었다면 10만여명의 이향민과 그의 후손들은 세상에 없었을 것이다.

어떤 말로도 이분들의 고마움을 표현할 수 없을 것이며 받은 은혜를 보답하는 차원에서 또 다른 선행을 베풀어 세상에 흘려보내면 이분들의 희생에 대한 보답이 되지 않을까 싶다.

(사)흥남철수작전기념사업회 이인재 . /사진= 김은아 기자
(사)흥남철수작전기념사업회 이인재 . /사진= 김은아 기자

- 빅토리호 승선 이후 3박4일 동안 미담 사례가 있다면?

= 국제시장이라는 영화를 통해 더 많이 알려진 흥남철수작전은 미화된 부분이 있다. 특히 밧줄을 타고 올라가는 장면은 영화적 요소라고 생각한다. 실제 공산당 체제가 싫어 피난을 결심한 10만여명의 사람들이 흥남항을 가득 메웠고 이를 역사적으로 잘 기록한 것이 '아 흥남철수작전이여'라는 책이다.

당시 6살 나이에 아버지 손을 잡고 두 명의 동생들과 1950년 12월22일 빅토리호에 승선했다. 배는 23일 흥남항을 출항해 24일 부산항에 도착했지만 하선하지 못하고 거제도 장승포항에 와서야 하선할 수 있었다. 배 안에서 보낸 3박4일은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꼼짝달싹도 하지 못한 기억밖에 없다.

하선 이후 장목면 송진포 어느 집 헛간에서 1년간 살면서 두 동생을 잃었다. 2년 후에 다시 여동생이 태어났다. 초등학교 3학년까지 거제에 살았다. 지금도 빨갱이라고 홀대하지 않고 안아준 그분들의 고마움에 머리 숙여 감사한다.

지난 8일 (사)흥남철수작전기념사업회 이인재 회장가 거제신문 김동성 대표이사가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 있는 흥남철수작전기념비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김은아 기자
지난 8일 (사)흥남철수작전기념사업회 이인재 회장가 거제신문 김동성 대표이사가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 있는 흥남철수작전기념비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김은아 기자

- 거제시 발전을 위한 조언이 있다면?

= 거제는 임진왜란과 한국전쟁에서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국난극복의 성지라고 생각한다. 이는 거제시민들이 자랑스러운 역사로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고 본다.

거제는 이미 조선산업을 세계 일류산업으로 정착시킨 저력이 있기에 임진왜란과 한국전쟁 상흔을 활용한 콘텐츠 개발로 일본 중국을 비롯한 세계인들이 거제를 방문할 수 있도록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조언해 주고 싶다.

거제도가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역사에서 사라질 수도 있었다는 자랑스러운 역사적 사실에 거제시민들이 먼저 자긍심을 가지라고 말해주고 싶다.

- 삶의 좌우명이 있다면.

= 지은보은(知恩報恩)을 삶의 좌우명으로 생각하고 살아왔다. 흥남철수작전을 통해 살아남은 이 자체가 기적이라고 보기에 살아 있는 동안 받은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을 하면서 살겠다고 다짐했다.

거제시를 위해 도움이 된다면 흥남시와 거제시민이 함께하는 화합 한마당 행사를 통해 돈독한 관계를 맺어나가고 더 나아가 이북5도민 체육대회를 거제시에서 개최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이인재 회장은
1945년 흥남에서 태어나 한국전쟁 때 메러디스 빅토리호를 타고 남하한 피란민으로 유년시절을 거제에서 보냈다. 부산중·고등학교 졸업하고 서울대 지질학과를 수석 입학·졸업 후 대한항공에 입사해 일본 주재원을 역임하다 퇴사했다. 지금은 항공총판 대리점을 창업해 운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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