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정 스님/대한불교 법화종 옥련사 주지

중국 송나라 때의 고승 원오극선사는 우리가 널리 알고 있는 서장의 저자 대혜스님의 스승으로 하루에 천개의 단어를 외울 만큼 머리가 비상한 분이었다.

어느날 묘적사에 놀러갔다가 불경은 읽은 다음 발심하여 자성스님을 은사로 삼아 출가해 공의 이치를 체득하게 되었다. 그러나 완전히 도를 깨달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극근스님은 이때부터 천하의 선지식을 찾아 선문답을 펼쳤고 대선지식들을 거침없이 비방하였고 스스로 교만을 더욱 키워갔다. 하루는 당대최고의 선사로 추앙받았던 오조법연선사를 찾아가 선문답을 하였다.

하지만 마음에 흡족하지 못하자 ‘도인이 아니다’생각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바로 그때 법연선사가 한 말씀 일러 주었다.

“자네의 지견으로는 천하의 선지식이 모두 자네 주먹 속에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결코 그렇지가 않네. 그리고 지금은 내 말을 믿지 않겠지. 하지만 열반당(병든 승려가 거쳐하는 곳)에 들어가 눈앞의 등불이 가물가물하게 보일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 너의 공부를 다시 점검하여 보아라.”

그 뒤 몇 년의 세월이 흐른 다음 극근스님은 큰 병을 앓게 되어 열반당에 들어갔다. 순간 법연선사의 말씀이 불현듯 떠오른 극근스님은 자신의 공부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전에 ‘알았다’하고 ‘이루었다’고 했던 것이 10만8천리 밖으로 달아났는지 자취조차 찾아볼 수가 없었다. 오직 극심한 고통과 죽음의 공포가 가득하였을 뿐….

극근 스님은 과거의 잘못을 마음으로 깊이 뉘우치고 눈물을 흘리며 법연선사의 자비에 감사를 드렸다. 그리고 병이 낫자 법연선사를 찾아가 참회를 올리고 스스로 시자가 되기를 자청하여 십년동안 법연선사의 밑에서 수행하였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밤낮없이 화두를 참구하고 스승을 시봉하며 지내던 어느날, 한 객스님이 법연선사와 문답을 하는 것을 들었다.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뜰 앞의 잣나무니라.”

이 대화를 듣는 순간 극근스님은 활연히 도를 깨쳤다. 자기의 본래 면목을 되찾은 것이다.

오늘날의 많은 불자들은 불법을 올바로 일깨워줄 스승이 없음을 탓합니다. 그러나 무조건 ‘탓’을 밖으로 돌려서는 안됩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나’를 깨달음의 길로 인도해 중 선지식은 많고도 많습니다. 원수같은 사람도 때로는 선지식이 되고 철없다고 여겼던 자식도 선지식 노력을 합니다.

문제는 오히려 ‘나’에게 있습니다. 내가 스스로 문을 닫아버렸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은 ‘나’만이 가지고 있는 열쇠로써 닫힌 문을 열어야 합니다.

곧 ‘나’스스로 만들어낸 교만과 의심과 고집을 버리고 열심히 열심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설혹 선지식이 올바로 지도를 해준다 할지라도 아만과 고집이 있으면 받아들이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원오극근선사의 수행담이 일깨워주는 교훈처럼 우리가 스스로 문을 닫고 만들어낸 아만과 고집 속에 갇혀 있으면 절대로 선지식을 만날 수 없게 됩니다.

바로 옆에 선지식이 있어도 보지를 못하고 선지식이 일어주어도 귀를 막아버립니다. 더군다나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과 교만과 의심과 고집이 들끓고 있다면 어떻게 선지식을 만날 수 있겠습니까?

환경과 남을 탓하기 전에 ‘나’의 마음을 비우고 ‘나’의 마음을 허공처럼 맑게 합시다. 탐욕 등을 비우면 비우는 만큼 주위의 티끌 수만큼이나 많은 선지식은 우리의 깨달음을 주고 마음이 맑아지면 진리는 저절로 ‘나’의 것이 됩니다.

아만은 자기분수를 올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짓게 되는 일종의 자리이탈 행위이며 스스로를 칭찬하고 높이는 것은 이와 같은 교만심리가 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아만은 인생을 착가 속에 빠뜨립니다. 착각은 결코 참된 도가 될 수 없으며 자리의 삶을 그르치는 행위가 될 뿐입니다.

반대로 아만을 버리고 하심을 하면 ‘나’를 향상시켜 중 스승이 반드시 나타납니다. 정녕 아만심을 버리면 스승은 어느 때, 어느 곳에나 있나니 부디 불법을 공부하는데 있어서 이 비결을 잊지 말고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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