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 6·25 무렵까지의 거제-손영목 장평소설 「풍화」 ②
해방 이후 6·25 무렵까지의 거제-손영목 장평소설 「풍화」 ②
  • 거제신문
  • 승인 2008.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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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호/창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

이러한 가운데 유엔에서 남한만의 단독선거 실시를 결정하자 남로당 중심으로 전국적인 소요를 획책하게 된 것이 소위 ‘2·7폭동’인 바, 거제에서는 연초지서를 비롯한 두어 개의 관공서가 공비들의 습격을 받아 피해를 입고 경찰관 몇 사람이 총격전 끝에 다치는 정도에 그치기는 했지만 이 사건으로 무장공비가 거제섬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비로소 밝혀졌고 그로 인해 주민들이 불안해하는 계기가 된다.

이러한 가운데서도 맹목적인 열정으로 자기 갈 길을 걸어가고 있는 윤기훈은 옥녀봉 산허리에 마련된 공비들의 아지트에 은거하면서 공비들을 지휘하는 최고 책임자이자 유격대장으로서 파괴, 살상, 식량조달 등이 그들의 주요 활동이다.

유부남이던 윤기훈은 같은 마을에 사는 심윤식의 여동생 윤선과 강제로 성관계를 맺어 윤선으로 하여금 기훈을 따라 공비들의 아지트를 찾아들게 함으로써 ‘돌림계집’을 비롯한 공비 생활의 일면이 드러나고, 심윤식 일가의 신산스런 조락(凋落)에 일조하게 된다.

공비 두목 윤기훈은 그 후 1949년 4월 경 옥녀봉, 계룡산, 대금산, 노자산 등에 은거한 공비를 소탕하기 위해 거제지역에 들어온 2개 중대병력의 군경합동 토벌대에 의해 다른 공비들과 함께 사살되고 만다.

한편 공비로서 활동하지는 않지만 좌익적인 정치활동에 관심을 갖고 있는 반영철은 일찌기 일본에 유학한 지식인으로서, 유학 당시 사회주의 운동에도 잠깐 관여했던 관계로 해방 후 좌익활동을 하게 된 사람이다.

화려한 정치무대의 진출을 꿈꾸고서 해주까지 월북하여 갔다가 대의원에 낙선되어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는 그는 ‘번번이 판단착오를 일으키는 자기의 두뇌’를 신뢰하지 못한 채, 결국 군경합동 토벌대에 의해 용공분자로 몰려 죽음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이념적인 사회변동과 함께 심윤식 일가의 결정적인 몰락의 계기도 넓게는 6·25 전쟁의 부산물이다.

즉 고현의 미군부대에서 부정 유출된 미군물자를 심윤식이 자신의 발동선을 빌려주어 밤에 몰래 싣고 장평리 선창으로부터 떠나려던 순간 미국군과 한국군의 헌병차가 들이닥쳐 위협 총격을 받던 중 심윤식이 총상을 입게된다. 심윤식이 두 달만에 집으로 돌아오자 정치망 어장마저 교활한 동업자인 박중건의 수중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심윤식은 그 후로 폐인이 되다시피 되는가 하면 윤식의 아들 덕수도 중학을 마친 후 고현 포로수용소 하우스보이로 전전하게 된다.

게다가 이런저런 말썽을 피우다가 전쟁에 나간 심윤식의 동생 윤태의 전사 소식을 전해들은 윤식의 모친 배골댁 마저 충격을 받고 석달만에 눈을 감음으로써 심윤식 일가는 갑작스럽게 몰락의 길을 밟게 된 것이다.

③ 아이러니의 시대 - 격동기,  거제인들의 질박한 언어 발굴

인간에 대한 신뢰가 교묘하고 약삭빠른 사람들에 의해 이용당하기만 하고, 그리하여 교묘하고 약삭빠르게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 세상을 활보하는 아이러니의 시대가 격동기의 특성이었다. 작가는 이러한 심윤식 일가의 몰락을 통하여 인간답고 아름다운 인간성이 유지될 수 없는 폭력의 시대를 고발하고 있다.

그리하여 좌익에 대해서도 우익에 대해서도 온건한 비판적 시선을 유지하는 작가는 끝내 인간의 인간에 대한 신뢰의 끈만은 놓치지 않는다. 비판은 하되 감싸안는 포용의 정신을 작가가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작품의 결말 부분에서, 이데올로기의 피해를 많이 받고 그 결과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던 심윤식 일가가 정든 고향을 떠나게 되었을 때 군에 간 윤식의 아들 덕수와 좌익활동에 동조해 용공분자로 잡혀 바다에 수장당한 반영철의 딸 봉선이 서로 사랑하는 관계로 암시되어지는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좌우익의 대립도 사랑에 의해 화해될 수 있음을 작가가 넌지시 암시하고 있다.

결국 작가는 삶의 회한과 덧없음을 덮어주는 따뜻한 시선을 통해 인간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확인하면서도 역사의 그늘이 미친 운명적인 삶의 아이러니를 애상적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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