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전어린이집 진한주 원장

거제시 장승포동에 있는 마전어린이집의 진한주 원장. /사진= 최대윤 기자
거제시 장승포동에 있는 마전어린이집의 진한주 원장. /사진= 최대윤 기자

1950년 장승포항의 겨울, 그리고 '임마누엘고아원'
그해 여름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사람들이 전쟁을 피해 남쪽으로 피난길을 재촉하면서 거제는 포로수용소와 피난민촌이 곳곳에 생기는 등 사람들로 넘쳐나는 섬(島)이 됐다.

그해 겨울 거제도 장승포 앞바다는 흥남철수 작전으로 1만2000명의 피난민을 태운 메러디스 빅토리호도 떠 있었다.

전쟁의 상흔이 남긴 것은 인명의 희생만이 아니었다. 전쟁통에 가정은 속절없이 무너져내렸고, 가장 혹독한 희생을 받아들여야 했던 것은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에게는 당장 안전한 잠자리와 생명을 이어갈 끼니가 시급했다. 그래서 마전동에서 어장을 운영하던 진도선씨는 거리에 남겨진 아이들의 눈빛을 가만히 지켜만 볼 수 없었다.

처음에는 5명이었다. 그리고 그 수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늘어 100명이 넘는 아이들이 함께하기도 했는데 그 아이들 틈바구니 속에 우리 남매도 함께였다.

거제 최초의 고아원이자 보육시설이었던 임마누엘보육원, 현재 마전어린이집 진한주(75) 원장이 기억하는 1950년 겨울의 이야기다.

당시 임마뉴엘 고아원은 故 진도선 원장이 운영하던 어장 한켠에 천막을 치는 것으로 시작했는데 당시에는 거제도 애광원의 설립자인 김임순 원장도 보모로 함께했단다.

어린 시절이었지만 그 시절 진 원장의 기억은 선명하다. 그의 집은 고아들만 식구(食口)로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다.

오발탄의 ‘이범선’ 소설가를 비롯해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유명인사들이 진 원장의 집 문턱을 넘었다.

마전어린이집의 진한주 원장. /사진= 최대윤 기자
마전어린이집의 진한주 원장. /사진= 최대윤 기자

아버지의 고귀한 뜻에 따른 귀향

진 원장은 부친은 광복 직후인 1945년 거제 최초의 유치원인 장승포유치원 설립, 1948년 거제중·고등학교 설립 참여 및 거제중학교 초대 교장, 1951년 임마뉴엘 고아원 설립(이후 임마뉴엘보육원-탁아소-어린이집 등으로 변경) 등 거제 교육사에 적잖은 획을 그은 인물이다.

진 원장의 외가도 거제에선 알아주는 명문가로 그의 외할아버지는 거제의 우장춘으로 불리는 신용우 선생이며 어머니는 신용우 선생의 맏이다.

신용우 선생은 거제에 맹종죽을 보급한 인물로 1927년 경상남도 모범 영농인으로 선정돼 일본 큐슈지방을 방문하던 중 거제에 맹종죽을 보급하기 위해 3그루를 들여오면서 거제 맹종죽의 시초를 마련했다.

또 그는 6·10대 하청면장을 거쳐 1949년 하청학원 재단이사장과 1952년 경상남도 도의원을 역임하며 각 분야에서도 활동을 펼쳤으며, 밤·고구마·포도 등의 품종 개량으로 농촌사회 근대화와 발전에 기여한 것은 물론 거제를 농촌경제발전으로 이끈 선구자로 알려졌다.

1945년 거제 최초의 유치원인 '장승포유치원' 당시 모습. /사진= 진한주 원장 제공
1945년 거제 최초의 유치원인 '장승포유치원' 당시 모습. /사진= 진한주 원장 제공

장승포초·거제중·거제고등학교 등 지역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친 진 원장은 대학을 위해 서울로 상경했다.

대학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곧바로 거제로 내려와 고아원에서 보모생활을 했다. 지금은 정부가 사회복지시설에 대해 지원을 하고 있지만 그렇지 못했던 당시에는 일 많은 고아원의 일손을 돕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진 원장 위로 언니 3명도 모두 임마뉴엘 고아원에서 보모생활을 하다가 시집을 갔다. 고아원 일이 여간 고된 일이 아니어서 보통 사람들은 힘들다고 넋두리도 했을 법한데 진 원장을 비롯한 남매들은 이미 어려서부터 원생들과 편견 없이 함께 자랐기 때문에 그저 평범한 일상으로만 여겼단다.

언니들과 마찬가지로 고아원 일을 돕다 결혼을 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고아원을 떠났던 진 원장이 다시 거제로 돌아온 것은 1985년 봄이다.

그해 봄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칠순을 바라보는 진 원장 혼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기엔 무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난 2008년 진도선 원장이 세상을 등지면서 진 원장에게 남겨준 통장 잔고는 7만원 남짓, 그리고 '슬기롭고 씩씩하고 명랑하게'라는 원훈이다.

진 원장은 그동안 부친이 남겨준 원훈을 한시도 잊지 않고 아이들을 씩씩하고 건강하게 키워 사회에 나가서 남을 돕고, 배려할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일에 매진했다.

특히 진 원장은 마전어린이집에 다니는 원생만큼은 거제에서 가장 좋은 음식을 먹이겠노라 다짐하며 실천해왔다.

진 회장은 거제시농업기술센터 산하 우리음식연구회가 만들어진 지난 1998년부터 오랫동안 회장직을 맡으며 향토음식에 각별한 애정을 쏟아온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 2015년 전국보육인대회에서 보건복지부장관 표창을 받게 된다. 전국의 보육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보육 사업 분야 유공자를 격려하는 자리에서 받은 최고의 영예였다.

마전어린이집의 진한주 원장. /사진= 최대윤 기자
마전어린이집의 진한주 원장. /사진= 최대윤 기자

마전어린이집은 거제보육의 요람

진 원장은 오는 26일 퇴임식을 갖는다. 신임 원장은 거제 지역 보육시설에 오랫동안 몸담아 온 인물로 마전어린이집을 더 밝은 미래로 이끌 동량(棟梁)이라고 귀띔했다.

최근 몇년 새 거제지역에 불어온 조선업 불황은 마전어린이집의 운영에도 적잖은 영향을 줬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99명이 정원이었던 어린이집은 늘 원생이 넘쳐났고,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려는 학부모들의 대기는 길었다.

하지만 현재 마전어린이집에 다니는 원생은 정원의 절반 수준인 49명 정도다. 그렇다고 어린이집 운영을 포기할 수만은 없기에 고심 끝에 퇴임과 새로운 인재 영입을 결정한 것이다.

70여년 전 거제 최초의 고아원으로 시작해 거제 최초의 어린이집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마전어린이집이 사회복지법인이라는 이름으로 국가에 귀속되면서 재산권 주장도 어렵게 됐다.

진 원장은 이 부분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 마전어린이집이 사회복지법인으로 바뀌는 동안 국가의 지원은 미미했음에도 부친이 남겨준 추억과 유산에 대해 최소한의 권리를 주장할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원장직을 내려놓는다고 해서 진 원장이 마전어린이집을 떠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는 마전어린이집을 위해 어린이집 내 마련된 텃밭을 가꾸고 아이들을 위한 영양만점 식단을 만드는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

진 원장은 "마전어린이집은 아버지를 비롯한 우리가족 개인은 물론 거제보육의 요람이었던 소중한 공간"이라면서 "앞으로 마전어린이집은 물론 거제의 더 밝은 미래를 위해 여생을 살아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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