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정 스님/대한불교 법화종 옥련사 주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가 수없이 많지만 제일 거룩한 열 분을 뽑아 우리는 10대 제자라고 하며, 그 가운데 천안제일로는 아나율(阿那律)존자를 꼽고 있다.

어려서부터 성격이 착하고 활달하였으며 매우 총명한 아나율 존자이지만 한번 잠이 들면 좀처럼 깨어나지 못하는 흠이 있어 출가한 다음에 늘 부처님의 꾸중을 들어야 했다. 한번은 부처님의 설법을 듣던 도중 졸고 말았다. 부처님께서는 아나율을 불러 단호히 말씀하셨다.

“한 번 잠들면 천년동안 깨어나지 못하는 조개가 있다고 하더니, 너도 그 조개처럼 한번 잠들면 깨어나지를 못하는구나. 그러고서야 어찌 수행하는 사문이라 하겠느냐?”

조용하면서도 호된 부처님의 꾸지람을 듣고 아나율 존자는 남들보다 수행에서 뒤떨어질 수는 없다고 결심하고 눈병이 나서 시력을 잃게 될 때까지 몇 달 동안 잠을 자지 않고 계속 정진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짓물러 보이지 않던 눈이 갑자기 밝아지고 정신도 상쾌해졌다.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온 우주의 하늘과 땅, 바다건너, 산 넘어 까지도 볼 수 있는 천안(天眼)이 열렸다.

천안을 얻은 아나율 존자는 어느 날 대사형인 장로사리불 존자에게 말을 건냈다.

“사리불 존자시여, 저는 청정한 계행과 엄숙한 수행으로 해탈의 경지에 들게 되었습니다. 존자께서도 하루 빨리 번뇌의 그물에서 벗어나 해탈을 이루고 성과를 얻으시기 바랍니다.”

사리불 존자는  “아나율 존자여, 그대가 「해탈을 얻었다」고 하는 생각을 가지는 것은 아직도 아만심을 버리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하루 빨리 그 아만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낮은 목소리로 꾸짖었다.

그 후 아나율 존자는 천안을 얻었다는 아만을 버리고 진정으로 바른 성자의 길을 걸었다.

불도를 수행하는 이에게 있어 참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만입니다. 아만(我慢)은 「나다」하는 생각이 가득하여 제 잘난 맛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마다 「내가 제일이다」하는 생각, 「내가 더 잘났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만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정신력이 뛰어난 이라고 할지라도 변천하는 생각을 멈추게 할 수는 없습니다. 한 생각이 일어나서는 잠시 머물다가 달라지고 사라져버리는 생주이멸(生主異滅)의 흐름이 계속 반복되고 있는 것입니다.

육체와 정신으로 구성된 「나」! 그 「나」는 끊임없이 변하다가 사라집니다. 무상하고 허망하기 짝이 없는 존재가 「나」입니다. 그런데 이 무상한「나」를 대단한 것인 양 내세우고 있으면 고통만 따를 뿐 공부에는 진척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공부하는 사람은 아만부터 없애야 합니다.

아만을 없애는 공부! 출사한 스님의 경우에는 이것이 첫 번째로 익혀야할 공부이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모든 승려에게 탁발(托鉢)을 하도록 정했습니다.

탁발은 걸식입니다. 먹을 것을 얻으러 다니는 구걸 행위입니다. 임금의 자리를 마다하고 출사한 부처님이 직접 바리떼를 들고 걸식을 하신 까닭은 무엇이겠습니까? 제자들로 하여금 아만을 버리도록 하기 위해 솔성수범하신 것입니다.

밥을 얻으러 간 사람이 거만한 자세로 먹을 것을 달라고 하면 누가 주겠습니까? 실로 불자라면 아만이 생기는 것을 철저히 다스려야합니다. 모름지기 하심을 하십시오.

아만을 버리고 하심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진실로 남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마음을 낼 수 있게 되고, 참된 봉사를 하면 내 마음은 저절로 편안해지며, 내 마음이 편안해지면 「나」를 대하는 모든 사람의 마음이 편안해질 수 가 있습니다.

이렇게 하여 일체 사람을 편안한 세계로 인도하면 대복전, 곧 큰 복밭을 만들 수 있게 됩니다. 반대로 아만을 부리며 밖으로 근사한 체하고 존귀한척 한들 실속은 전혀 없습니다.

마치 썩은 배를 물에 띄우면 푹 잠겨 버리는 것과 같이 삼악도의 바다 속으로 깊이 빠져 들어갈 뿐입니다. 물은 높은데서 아래로 흘러갑니다. 곡식은 익을수록 고개를 숙입니다. 

「나」는 잘났고 「너」는 별 것 아니라는 교만한 생각이 사라질 때 조작이 없는 진실한 도는 저절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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