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은 삼복(三伏)이 시작되는 초복이다. 올해는 마른장마가 이어지며  더운 날들이 지속되고 있다.

우리 조상들은 이 같은 더위에 산과 계곡을 찾아다니면서 청유(淸遊)를 즐기거나 삼계탕, 개장국(보신탕)과 같은 보양식으로 더위에 지친 몸을 달랬다.

조선시대 궁궐에서는 더위가 시작되기 전인 단오에 나이든 원로 신하들에게 제호탕(醍湖湯)과 부채를 하사해 더위를 잘 이겨내도록 하였다고 한다.

여름이 되면 우리 몸은 진액(津液)이 손상되기 쉽고 음식으로 인한 배탈이 잘 나기도 한다.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더위 먹는다’고 하는데 입맛도 없고 식은땀이 나며 열이 나기도 하는 등 모두 진액과 비위(脾胃)에 연관된 증상들이 많다.

그래서 여름철에 복용하는 음료나 탕제에는 진액과 소화기관을 다스리는 약재들이 다용된다. 그 중 대표적인 것으로 오미자 맥문동 향유 인삼 황기 매실 등이 있고 이를 이용한 음료에는 제호탕이나 오미자차, 생맥산(生脈散), 향유차 같은 것들이 있다.

제호탕은 오매(매실을 연기로 검게 훈증하여 만든 약재), 사인 초과 백단향 꿀로 만들고 오미자차는 오미자에 설탕이나 꿀을 곁들이며 생맥산은 맥문동 오미자 인삼을 기본으로 황기나 감초를 가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향유차는 향유만을 달여서 물처럼 마시면 된다. 이 약재들은 주로 생진(生津·진액을 만들어 냄)하는 작용이 뛰어나고 오미자나 오매와 같이 맛이 신 것들이 많아 늘어진 기운을 수습하는 작용을 한다.

또 황기나 인삼은 기운을 보충해주고 땀을 수렴시켜 주는 효능이 있으며 향유 사인 백단향은 방향성이 강해 소화를 돕고 여름철 쉽게 걸릴 수 있는 설사 등을 예방하고 치유하는 효능이 있다.

이런 사실들로 볼 때 여름철 건강유지법은 얼마나 우리 몸의 진액을 잘 보존하고 소화기능을 잃지 않느냐에 중점을 두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것중 제호탕에 대해서 살펴보면 ‘동의보감’에서 “더위로 인한 열을 풀고 속이 타는 것과 갈증을 그치게 한다”고 했다.

만들고 복용하는 방법으로는 오매육 한 근(600g), 초과(草果) 한 냥(37.5g), 축사(縮砂)(=사인(砂仁)), 백단향(白檀香) 각 다섯돈(각 18.7g)을 곱게 갈아서 끓인 꿀 다섯근(3㎏)에 넣은 뒤 은근한 불에 중탕해 잘 섞어 고(膏)를 만들고 자기나 항아리에 담아두고서 여름동안 시원한 물에 타서 수시로 마신다.

제호탕의 ‘제호’는 맑은 술 또는 잡미가 섞이지 않은 우유나 양유를 정제한 농축액을 뜻하며 불설(佛說)에서의 오미(五味)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를 마시면 정신이 맑아지고 상쾌해지므로 ‘제호관정(醍?灌頂)’이라 부르기도 했다.

제호탕은 일화가 많은 음료이자 약으로 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한 한음 이덕형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한음이 임진왜란 후 정승으로서 바쁜 정무 때문에 밤낮없이 대궐을 드나들어야 해 궁궐 가까이 집을 구하고 첩을 들여 수발들게 했다.

어느날 정무를 마치고 첩의 집에 들렀는데 영민한 첩이 대감이 몹시 치쳐있는 것을 알아채고 시원한 제호탕을 올렸다. 이에 묵묵히 있던 대감이 갑자기 첩에게 이별을 통지했다. 그 이유를 모르던 첩은 한음과 지기이던 오성 이항복 대감에게 찾아가서 물었고 오성 역시 의아해하며 한음에게 그 연유를 묻었다.

한음 왈 “첩이 자기가 지치고 목말라하는 것을 미리 알고 제호탕을 준비하니 그날따라 더욱 첩이 이뻐 보였고 문득 이렇게 미색에 빠지면 국사에 소홀할 수 있겠다 싶어서 그리했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또 이 음료를 두고 구한말에 최영년(崔永年)이란 사람이 지은 시도 있다고 하니 시 한수 소개하고 마치도록 한다.

醍호湯                梅下山人

年年滌暑太醫方
百煉烏梅白蜜湯
拜賜宮恩如灌頂
仙香不讓五雲漿

-해마다 더위를 씻어주는 어의의 처방
-오매와 좋은 꿀을 백 번 달여 만든 탕
-절하며 받은 임금님의 은혜가 정수리에
 물을 부은 듯하고
-묘한 향기는 좋은 술에 뒤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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