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내 계룡수필문학회원

집을 지어 이사한 지 넉 달이 되었다. 이층에 아이들 방 두 칸이 있다. 아이들이 서울에서 생활하니 거의 비어 있다. 그래서 비어 있는 방에 민박을 하기로 했다.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의 소개로 사람을 들이다 보니 방값을 받는 순간이 참으로 민망하다. 나의 고민 아닌 고민을 듣고, 어떤 분은 아직 익숙하지 못해서 그렇지만 조금 지나면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며 귀띔을 한다.

나 또한 스스로에게 위안을 한다. 전기세, 수도세를 내야 하니 괜찮아. 그런데도 뒤가 마려운 사람처럼 안절부절 마음이 편하질 않다. 예전에 어머니가 행하시던 일을 생각하니 그런 모양이다. 

육십 년대 초반, 너나 할 것 없이 가난하고 어려운 살림살이였다. 그러다 보니 먼 곳까지 행상을 다니며 물건을 파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은 대부분 아이를 등에 업고 다니는 여자들이었다.

내 기억 속에도 당시 우리 집을 드나들던 아낙들은 아이를 들쳐 업고 있었다. 꿀 담은 그릇을 보자기에 싸서 머리에 이고 행상을 다니는 그녀들은 대개가 둘 이상 짝을 지어 다녔다.

여자들만이 다니는 행상이라 여러 모로 애환이 많았을 것이다. 세상살이가 어렵다보니 그녀들의 돈을 탐내는 사람도 있었을 테니까. 그래서 둘씩 짝을 지어 다녔는지도 모른다.

그녀들이 가지고 다니는 꿀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설명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그릇에 찬물을 담아놓고 꿀을 따랐다.

그러고는 물을 부어 꿀이 섞이지 않고 그대로 그릇에 담겨 있으면 진짜 꿀이라 했다. 이제는 물과 꿀이 휘젓지 않으면 같이 섞이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당시에는 꿀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

그러니 그녀들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당시의 사람들이 그만큼 순박했다는 뜻일 수도 있다. 흥정이 끝나면 쌀과 보리 등 곡식을 주고 꿀과 바꾸기도 했다. 그때만 해도 물물교환식의 거래가 허다했다.

먼 곳까지 행상을 나온 여자들이 돈을 지불하고 잠을 자거나 끼니를 때우는 일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낮에 집집을 다니며 행상을 하다 인정이 있어 보이는 집을 봐 두었다가 땅거미가 드리우면 찾아갔다.

방이 비좁으면 앉아서라도 잘 수 있게 해달라고 졸라댔다. 비좁기 한량없는 시골집에 대식구이니 여유 있게 잘 수 있는 방이 있을 리 없었지만, 그래도 시골 인심이 그게 아니었다.

우리 집은 언제부터인가 그 행상인들의 숙소가 되었다.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우리 칠남매로 아홉 식구가 복작거리며 살고 있을 때다. 거기다 동네에 사는 삼촌집의 사촌들까지 가끔 잠자러 오기도 했다.

그 와중에 꿀 팔러온 여자들과 등에 업힌 아이들까지 함께 자야하니 모두가 새우잠을 자야 했다. 밤새도록 불편한 잠을 잤지만, 그 누구도 불평을 늘어놓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보아온 일이라서 그러려니 했다.

아침밥까지 챙겨준 어머니에게 고맙다며 꿀을 주려 했지만 어머니는 극구 사양했다. 먼 곳까지 행상을 다니며 힘들게 버는 돈임을 알고 있었기에 오히려 그들을 걱정했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 살기도 참 좋아졌다. 먹는 것 입는 것 또한 풍족하다. 그렇지만, 세상인심은 예전에 비해 각박하기 그지없다. 모든 것에 셈을 치르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살이다.

거저 얻는 건 없다. 대가가 따라야 한다. 주거니 받거니 해야 하고, 주면 되받을 것을 미리 염두에 두게 되니 현실이 얄밉다.

하룻밤 잔 값을 치루고 머리 꾸벅이며 나가는 사람들의 등을 바라본다. 대가를 지불하고 당당히 나가는 그들의 뒤에서 나는 받아든 돈을 쉽사리 주머니에 넣지를 못한다.

그냥 재워주지 못한 마음이 미안해서 그런다. 사람들이 들고난 자리를 치우면서 어머니를 떠올리며 나를 돌아본다. 그 시절엔 여유는 없더라도 물 한 사발에도 훈훈한 정이 있었는데….

물질은 풍요해졌지만 정신은 점점 황폐해진다. 어떤 땐 세상에 돈이란 게 없으면 좋겠다는 생뚱맞은 생각을 할 때도 있다. 내게 잠재되어 있는 나약함의 소산인지 몰라도 치열한 삶이 싫을 때가 종종 있다. 무한 경쟁이 두려운 것이다.

현실에 맞추어 자신을 합리화시킨다. 그래, 돈을 받는 건 당연해. 대신 그들을 인정으로 대하는 거야. 집에 찾아든 손님을 내 가족처럼 생각하고 된장찌개라도 나눠 먹으며, 정분을 쌓는 거야. 예전의 내 어머니가 하신 것처럼.

여기저기 그들이 남기고 간 흔적을 치우면서, 무거웠던 내 마음도 조금씩 무게를 덜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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