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담-금수사 주지스님

요즈음처럼 날이면 날마다 눈만 뜨면, 촛불문화제다 농성이다 하고 하루가 지나면 물가가 오른다고 하고 농성이다 파업이다 백일밖에 안된 정권의 퇴진이다 하며 어린아이의 유괴 및 성폭행 강도 살인 등이 횡횡하고 난무하는 현실에서 날이면 날마다 좋은 삶을 사는 것은 어떻게 해야 될까?

본인은 산사의 승려이기 때문에 불교적인 관점에서 이 문제를 풀어 보고자 한다. 선불교(禪佛敎)에서 선(禪)을 하자면 화두를 든다.

이 화두를 공안이라고 하며 그 유명한 천칠백 가지나 되어 천칠백 공안이라고도 한다. 이 공안 중에 운문 문언 선사라고 하는 유명한 고승이 있다.

이 스님의 공안에 “日日好 是 日” 날마다 좋은 날이라는 화두가 있다. 이것은 여기 현실에 굳건히 두발을 딛고 번뇌를 보리(진리)로 승화 시키고 생사를 열반으로 수용하는 불교의 현실관을 새삼 생각하게 하여 준다.

불교의 현세는 날마다 좋은 날임을 체험하고 지각하는 삶이다. 현실의 보살행이며 불교인의 인격인 것이다. 불교에서 이상적으로 추구하는 극락세계 혹은 상적광토 하루하루를 후회 없이 좋은 날로 남김없이 살아가는 것이리라.

영원불멸의 삶, 구원의 삶이란 현실의 삶을 벗어나서는 결단코 안 될 것이다. 윤리도덕을 지키고 착한 일을 하고 이웃을 도우며 사회에 봉사를 하고, 희생하는 것이 저 세상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데 필요하다고 착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종교는 어떤 종교를 막론하고 영적이고 내면적인 초월을 추구한다. 모든 종교는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실천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

운문선사는 날마다 좋은 날이란 화두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세상 사람들은 이미 가버린 과거에 너무 집착하여 귀중한 시간을 낭비한다. 이미 가버린 일들은 그대로 묻어 버리고 있어야 한다. 영원한 시간의 흐름은 시작도 끝도 없이 흘러가고 있다. 영원한 미래에 대한 자신들의 미래를 말해 보라”

운문 스님은 자신의 물음에 선뜻 대답을 하는 이가 없자 스스로법문을 듣고 있던 선승들을 향해 답한다.

세상 사람은 비가 오면 날씨가 나쁘다고 하고 비가 그치고 해가 뜨면 날씨가 좋다고 한다.

또한 계속 해가 뜨면 가뭄이라 하고 비가 많이 오면 홍수라고 소란을 피운다. 그러나 우주가 인간을 위해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우주에서 본다면 소나기, 태풍, 홍수, 가뭄도 모두 자연적인 현상일 뿐 거기에는 선과 악의 구별이 없다. 우주의 절대적인 진리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날마다 좋은 날인 것이다.

불교적으로 말한다면 운문선사의 말은 우주의 아름다움 속에 스스로 몰입시켜 본체와 현상, 절대와 상대를 하나로 뭉쳐서 번뇌가 보리요 생사가 그대로 열반인 것이다.

현실의 세속적인 상대적인 차별상을 절대적인 신비로움으로 감싸 안아 일체 만유의 평등을 펼치기도 하고 능력과 분수에 따르는 차별의 현실을 인정하기도 한다.

어떻게 해야만 날마다 좋은 날을 사는 것일까? 모든 성인 성현들의 행동을 따르고 경전을 보고 하는 것도 날마다 좋은 날을 사는 한 가지 방법인 것이다.

우리의 의식과 눈을 자신의 행동과 인격 속에서 어떤 보이지 않는 절대적인 혹은 초자연적인 것으로 향하게 해서는 안 된다. 현실 속에 살아 움직이는 불보살을 찾고 따르는 삶에서 찾아야 한다.

불교의 궁극적인 제일 목표는 중생제도이다. 중생제도는 다른 말로 인간구원 세상을 아름답고 밝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모든 불교신도들이 이 세상을 아름답고 밝게, 이 현실 사바세계를 정토로 만들려는 삶을 살아야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종교의 교조적인 삶이며 생활이며 사유 해야 될 것이다.

불·보살을 따르는 삶은 허공 속을 헤메는 막연하고 관념적 정신적인 메시지가 아니라 매일 매일의 생활 속에서 구체적인 모습으로 현존 현현해야 된다. 즉 지금 현실에 이 땅에 살고 있는 인간의 구체적 역사적 삶 속에서 현실적으로 실현 되어야 한다.

이렇게 불교인들은 삶을 매일 매일을 즐거운 날들로 살아가는 것을 이 현실을, 이 시각 이장소가 정토임을 자각하고 살아야 참된 삶이 될 것이다.

이것을 불교의 최대·최고의 경전인 화엄경에서는 법계장엄장 해탈이라 한다. 자 여러분 모두 같이 법계장엄장 해탈을 하여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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