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농협 주영포 조합장

농·수협은 농·어촌과 농·어업을 발전시키고 농·어업인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졌다. 특히 대도시 농업과 달리 지역 농·수협은 해당 지역의 경제와 문화의 9할을 책임지는 곳으로 농·어촌 현장 일선에서 농어민들의 손을 맞잡고 애환을 나누는 생활의 중심이기도 하다. 본지는 거제지역의 농·수협을 차례로 찾아 고령화와 경제위축, 인구감소가 가속화되고 있는 거제지역 농·어촌의 문제점과 해답을 얻고자 한다.   - 편집자 주

신바람 나게 달리는 '신토불이 행복마차'

“요즘 같은 불볕더위에 어르신들이 아이스크림 한입 베어 물고 행복해하시는 모습을 보면 정말 뿌듯합니다.”

지난 2일 ‘찾아가는 행복마차’가 거제시 하청면 마을 곳곳을 순회하기 시작하면서 하청농협 주영포 조합장은 농촌 어르신들보다 더 신이 나 있다.

수익보다는 농촌 복지에 초첨을 맞추고 운영 중인 행복 마차는 먼 길 생필품 구입에 어려움이 많았던 주민, 거동 불편하신 어르신에겐 그야말로 ‘효자’다.

하지만 꼭 물건을 사지 않아도 다양한 물건을 구경하는 재미도 행복마차의 또 다른 매력으로 구매보다는 물건 구경을 기다리는 주민도 많다고 한다. 더구나 코로나로 나들이가 꺼려지는 요즘 같은 시기에 하청농협의 행복마차는 달리는 마을마다 어르신들의 함박웃음 몰고 다닌다.

면지역 농민들이 수확물을 팔려면 먼 도시지역까지 버스 등으로 이동해 팔아야 하지만 더큰 문제는 그렇게 힘들게 물건을 팔러가도 100% 팔린다는 보장이 없어 결국 헐값에 시장 상인 등에게 넘기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하청농협의 자랑인 행복마차는 먹거리 접근성과 복지에 소외된 농촌주민들을 찾아가 농산물 수거, 생필품 판매, 로컬푸드 판매 및 수거, 공과금수납기 및 금융서비스까지 진행하고 있어 농촌 어르신들에겐 ‘효자가 따로 없다’는 평을 듣는다.

이동형 장터 트럭(3.5t)인 행복마차가 운행한지 1개월도 되지 않았지만 개점 이후 다른 지역 단위 농협에서 벤치마킹이 쇄도하고 있다.

먼 친척보다 나은 살가운 농협 만들 것

하청면의 행복마차 사업은 거제시와 중앙농협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애초 계획은 하청 농협 전무 시절부터 세워졌다. 조합장에 뜻을 가지고부터 조합원들의 사정을 알기 위해 애써 시내버스를 타기 시작했고, 조합원인 주민에게 가장 큰 불편은 편의시설 부족이라고 생각했다.

조합장이 된 이후에도 하청농협은 7개월 동안 직원들이 번갈아 가며 시내버스를 타고 농민들의 애로사항을 직접 청취했고 지금은 각 마을별 담당을 둬 조합원의 애로 사항을 알뜰살뜰 챙기고 있다.

지난 1984년 3월 지금의 ‘해금강농협’에서 인연을 시작으로 올해로 농협과 37년 가까이 인연을 이어오고 있지만, 처음에는 어떻게서든 농협을 그만둘 궁리만 했단다.

친구들과 조경사업 준비로 마산에서 생활하던 중 친척의 권유로 농협 시험에 붙었지만 월급  7만8000원의 적은 임금에 첫 발령지인 동부면까지 가려면 유계-고현-거제면을 거쳐 왕복 4시간 가까운 비포장길을 오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험에 붙고도 친척들을 피해 도망 다녔고 할머니의 장례식에 발목이 잡혀 내려오게 되면서 하청농협에서 근무하기 전까지 4년 6개월 동안 해금강농협에서 근무를 해야 했다고 했다.

주 조합장은 처음에는 농협 일이 적성에도 맞지 않고 힘들었지만 갈수록 보람 느끼게 됐다고 했다. 지금이야 금융 사업 등이 많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농민과 살 부대끼며 하는 사업 많았다고 한다.

하청 농협 구매계를 전담하면서 죽순, 인삼, 십전대보탕, 표고버섯, 복숭아 통조림 등 다양한 물건을 만들어 팔기도 했지만 가장 기억 나는 상품은 복숭아 통조림이라고 했다. 죽순 통조림 가공 공장에서 12년 동안 근무하면서 지역 농산물이 아닌 제품까지 팔아야 했기 때문이다.

하청의 특산품인 죽순은 봄 한 철이면 생산과 가공이 끝나기 때문에 나머지 계절은 잉여인력이 남았다. 그래서 공장과 인력을 놀릴 수 없어 궁여지책으로 생산하게 된 것이 복숭아 통조림이었고 90년대 소련의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수출을 이어가며 정부에서 주는 수출탑까지 수여했다.

주 조합장은 그때의 열정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신이 있었다고 했다. 주 조합장은 “내가 수고로울수록 조합원과 직원들이 좀 더 편할 거 같아서 일을 만드는데 주변에선 좋아하지 않는 눈치”라면서 “이웃사촌이 먼 친척보다 낫다는 말이 있듯이 지역사회에서 농협은 이웃사촌처럼 조합원과 지역을 챙기는 곳이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계약직, 낮은 자세에서 절박하게 일할 것 

주 조합장은 요즘 하청의 특산품인 맹종죽 가공하기 위한 문제로 뜬 눈으로 지내는 일이 많다고 했다.

한때 전국 생산량의 95%를 차지할 만큼 유명했던 하청 맹종죽은 80년대까지만 해도 높은 가격으로 일본으로 수출돼 재배 농가에 효자 노릇을 해왔으나, 9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수입되기 시작한 값싼 중국산에 밀려 가격 경쟁력을 잃고 시장에서 외면당하더니 근래는 거의 명맥이 끊길 지경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하청 맹종죽은 담양의 공장에서 각종 대나무 제품의 가공 재료로 팔려나가기 까지하고 있다.

주 조합장은 최근 대나무로 만든 친환경 칫솔 제작을 계획 중인 국내 대형 칫솔회사와 계약 체결로 연간 100~150만 개 수준의 칫솔(몸통) 재료를 납품 계획을 진행 중이다.

대나무 두께에 따라 생산할 수 있는 제품에 한계가 있는데 현재로선 100만 개 정도가 최선이며 대나무를 계획적으로 관리만 하면 3년 내 현재의 10배에 달하는 원재료를 생산할 수 있다고 한다.

주 조합장은 하청의 대나무로 대나무 숯, 대나무 수액, 대마무 소주, 대나무 용기 등 다양한 만들어서 거제에서 생산되는 신선한 농특산품을 하청면의 대나무 숯으로 요리하고, 대나무 접시에 담고, 대나무 젓가락으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하청농협이 한동안 중단됐던 맹종죽 수매를 하고 대나무 조림사업을 각 마을에 권장하고 있는 것도 모두 주 조합장의 큰 그림의 밑바탕인 셈이다. 

주 조합장은 최근 하청농협이 10년 넘게 운영해온 백병원 장례식장의 운영 사업을 포기했다는 소문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중앙농협의 지원 규모 때문에 마찰이 있는 것은 맞지만 유언비어와 달리 현재 붕백병원 장례식장 운영의 우선협상대상자로서 재계약 절차를 진행 중이라고 했다.

주 조합장은 “죽순의 본고장에서 죽순 요리 하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나는 조합장이기 이전에 조합원들을 위한 계약직으로 조합에서 서열 순위가 가장 낮은 사람”이라면서 “농민과 조합원이 주는 월급은 모두 그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만큼 절박하고 소중하게 ‘잘사는 농촌 하청’을 반드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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