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철 스님/장흥사 주지

달력은 음력 오월, 즉 한여름을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만 아직은 부처님오신날이 들어있는 음력 사월입니다.

오월은 그래서 자비광명이 충만한 달입니다. 오월을 보내며 부처님 오신 참뜻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지가 현재 네팔에 위치한 룸비니 동산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100여년 전만 해도 역사의 흔적을 찾지 못해 일부 학계에서는 석가모니의 실존여부에 대한 논란까지 있었던 모양입니다.

서력으로 5세기 초 인도를 여행한 법현 스님은 여행기 《법현전》에서 탄생지에 대해 “성 동쪽 오십리에 왕의 동산이 있는데 룸비니라 한다.”고 했습니다.

또 7세기에 인도를 여행한 현장 스님은 《대당서역기》에서 “보살이 태어난 곳에 아소카나무가 있지만 이미 고목이 되었고, 아소카왕이 새운 탑이 있고, 그 옆에 말 모양 조각이 얹힌 석주가 있다”고 적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장 스님의 답사 직후 이슬람교도의 침략 등 혼란의 시기가 도래하며 룸비니는 역사의 뒤안길에 파묻히고 맙니다.
이렇게 룸비니는 기록만 전해졌을 뿐 명확한 위치가 밝혀지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1896년 12월 독일의 고고학자인 퓌레르가 네팔의 타라이분지 파다리아 마을에 있는 ‘룸민데이’라는 사당을 조사하면서‘ 카로슈티’문자로 비문이 적힌 석주를 발견하며 비로소 그 위치가 알려지게 됩니다.

비문에는 “이 마은은 도지의 세금을 면제하고, 오직 생산물의 1/8(통상 1/6)만 세금으로 징수한다”는 기록이 적혀있어 특전이 주어졌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탄생과 불교의 역사가 허구가 아닌 사실이었음을 입증해 준 셈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출가하신 이유는 자신의 깨달음을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깨달음을 이루신 이후에는 ‘일체 중생의 제도’라는 서원을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중생들을 성불로 이끌기 위해 45년 간 설법을 합니다. 그것은 타인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이타적인 삶이었습니다.

자비광명이 가득한 오월, 우리는 미얀마와 중국으로부터 슬픈 소식을 전해 듣고 있습니다.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희생됐고,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피해를 입어 고통에 신음하고 있습니다.

중생과 함께 열반에 들고자 했던 부처님의 이타심(利他心)을 되새기면서 미얀마와 중국 이재민들을 도울 수 있는 작은 나눔을 실천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나누는 만큼 내 복덕이 쌓이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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