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수 거제신문 서울지사장
김철수 거제신문 서울지사장

페르소나(persona)'는 오래된 용어지만, 현대사회처럼 복잡하고 개인화된 다매체 사회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새삼 떠오르고 있다. 페르소나는 어려운 개념이지만 최근 들어 그 말이 낯설지 않게 됐다. 글로벌 아이돌 방탄소년단 BTS의 신작 앨범이 바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정체성', 즉 페르소나를 전 세계적 화두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여러 문화권의 신화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질문이다. 인간은 늘 정체성의 혼란을 겪어왔지만 현대에 들어와서 이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배경을 알아보도록 하자.

'인간은 천 개의 페르소나를 갖고 있고, 상황에 맞게 꺼내 쓴다'라고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이 말했다. 페르소나는 심리학에서 타인에게 비치는 외적 성격을 지칭하는 용어다. 원래 페르소나는 고대 그리스에서 배우들이 쓰던 가면을 일컫는 말이었는데, 구스타프 융이 이것을 심리학에 차용해 인간은 천 개의 페르소나를 갖고 있어서 상황에 따라 적절한 페르소나를 바꿔가며 산다고 설명했다.

오늘날 이해하기 어렵고 상충하는 많은 트렌드가 나타나는 것은 사람들이 여러 개의 가면을 갖고 상황에 따라 바꿔 쓰기 때문이다. 즉 '멀티 페르소나'는 최근의 사회 변화를 이해하는 '만능키'라고도 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사람의 정체성은 혈통과 직업을 기반으로 형성됐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성씨만 하더라도 부성(父性)에 기반한 전통의 산물이며, 과거 서구에서는 직업의 명칭을 따서 이름을 짓기도 했다. 혈통과 직업은 매우 안정적인 기반이었다.

그런데 현대에 들어서며 정주가 아닌 이주, 즉 노마디즘(nomadism)의 시대가 도래 했다. 사회가 개인화하면서 혈통의 의미가 퇴색하고, 직업 영역에서도 여러 일을 동시에 수행하는 이른바 N잡러와 긱(gig) 노동자가 급증하면서, 정체성의 기반이 흔들리게 된 것이다.

이제 유연한 자아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인도의 신 비슈누가 10개의 아바타를 가지듯이 동시대는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이 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나아가 다양한 SNS 시대를 맞이하면서 인간 정체성의 복합성은 더욱 확장되고 있다. 다양한 자아 정체성 표출은  단일 자아에게 일률적으로 귀속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 자체로 '멀티 페르소나'를 이루며 존재하게 된다.

이러한 멀티 페르소나는 공간과 시간을 초월하고 순간순간이 업데이트되며, 상호작용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하고 리셋이 가능해 완전히 다른 인생의 모습으로 빠르게 '모드전환'할 수 있다. 즉 정체성은 고정불변의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며 유동적인 개념으로 변화한다.

특히 온라인에서의 '정체성 놀이'는 현실 그대로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융합·변형을 통해 구현되는 폭넓은 자유도를 갖게 됐다.

자기 정체성의 변화폭은 연출·편집 능력에 따라서 커지고 빨라진다. 주변을 살펴보면 복싱하는 여배우·노래하는 군인·운동하는 아나운서·보디빌더 소방관·쿨가이 기업가 등 'OO하는 누구'가 많아졌다.

이러한 사례는 현대인이 다양한 정체성의 조합으로서 '모듈형 인간'을 지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모듈성이란 정체성이 크고 작은 레고 블록처럼 개별성을 유지한 상태로 서로 합쳐지고 변화되고 확장되면서 항시 수정 가능한 상태로 이루어지는 것을 지칭한다. 정체성의 레고 블록은 조합 방식과 형태에 따라 각각 다른 모형으로 만들어진다.

현대인들이 다양하게 분리된 정체성을 갖게 되면서, 이제 '나 자신(myself)'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 즉 멀티 페르소나(Me and Myselves)가 됐다. 직장에서와 퇴근 후의 정체성이 다르고, 평소와 덕질할 때의 정체성이 다르며, 일상에서와 SNS를 할 때의 정체성이 다르다. SNS에서도 그것이 카카오톡·유튜브·인스타그램 등에 따라 다른 정체성으로 소통을 하고, 심지어는 하나의 SNS에서도 한 사람이 여러 개의 계정을 쓰며 자신의 모습을 바꾼다.

멀티 페르소나의 시대, 인간의 다원성은 확장됐지만 역설적으로 정체성의 기반은 매우 불안정해졌다. '나다움'이란 무엇인가? 진짜 나는 누구인가? 다매체 시대를 사는 현대인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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