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진국 거제공증사무소 변호사
석진국 거제공증사무소 변호사

코로나 시대에 설날 연휴를 맞이하니 한적한 거제면 법동의 시골은 예년에 비해 훨씬 조용하다. 어릴 때 설날은 손꼽아 기다리던 큰 명절이어서 대개 두어달 전부터 아이들은 이제 몇 밤 남았다고 세었다.

무엇을 기다리었나? 새 옷과 새 신발 그리고 떡과 과일 유과…. 그렇게 음식과 물자가 부족하던 가난한 나라에서 지금은 세계 10대 강국이 됐지만 인간의 행복이 그렇게 비례하지는 않는다.

설날이 됐지만 할 일이 없어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청마기념관을 찾았다. 코로나는 여기도 예외가 아니어서 기념관은 닫혀 있구나! 그 주변과 생가를 둘러보고 산책을 하다가 왔다.

10여년 전에 거제로 와서 공증사무소를 개설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 80대의 할머니 3명이 와서 공증을 받았다. 내용인즉 청마가 출생한 곳은 거제시 둔덕면 방하라는 사실이었는데 그들은 청마의 세 딸이었다.

가까운 통영에도 청마기념관이 있어서 거제와 통영이 서로 내 사람이라고 싸우는 형국이다. 사실은 청마가 이곳 둔덕 방하에서 태어나서 3살 무렵 통영으로 이사했다. 그래서 그 공증받은 문서가 둔덕의 청마기념관에 비치돼 있고 덕분에 내 이름도 거기에 나온다.    

청마는 푸른 말이지만 그의 세 딸이 벌써 80대. 그때도 이미 10여년이 지났으니 지금은 모두 90대…. 별세했을 가능성이 많다. 그렇게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청마라는 푸르름과 그의 시는 여전하다.

1908년생이니 일제시대를 온전히 살았고, 1967년에 별세했으니 해방과 전쟁을 다 살았다.

참으로 힘들었을 것이다. 청마는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1937년부터 통영에서 교사가 된 뒤 교육계에 종사했고, 1939년 첫 시집 '청마시초'를 펴냈다.

해방 직후 생명에의 열애를 노래한 점에서 서정주와 함께 '생명파 시인'으로 불렸다.

여기에 청마 유치환 시 2점을 적어본다.

그리움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행복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려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서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에게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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