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거제다대교회 목사
김수영 거제다대교회 목사

작년 10월13일 우리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한 사건이 있었다. 16개월이 된 어린 정인이가 입양된 지 8개월 만에 양부모의 폭력으로 온몸에 멍이 들고 내장이 파열돼 비참하게 죽임을 당한 아동학대 사건이었다.

지난주 수요일(17일) 오전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2차 공판이 열렸는데 정인이가 다녔던 어린이집 원장이 증인으로 출석해 "작년 3~5월 사이 어린 정인이의 몸에 수차례 흉터와 멍이 퍼렇게 들어 있는 곳을 보았으며, 7~9월 사이 코로나로 인해 가정에서 지낸 후 등원한 다음 정인이는 기아처럼 말라 다리를 부들부들 떨면서 잘 걷지를 못하는 모습을 보고, 겁이 나고 무서워서 병원에 데리고 갔는데, 소아과 의사가 정인이 입안 상처와 체중감소를 이유로 아동학대 의심 신고를 해야겠다고 해서 신고하게 됐다"고 하면서 "사망 전날 정인이는 다 포기한 모습이었다"면서 눈물을 흘리며 충격적인 증언을 했다.

나는 이 사건을 접하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며 시간을 보냈다. 문명사회라고 자부하며 사는 이 시대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그것도 정인이의 양부모가 목사의 아들과 딸이 아닌가 말이다.

목사인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충격 그 자체였다. 그리고 내가 믿는 기독교 신앙이 도대체 무엇이지 할 정도로 깊은 회의가 들어 한동안 헤매고 다녔다. 시간이 지나 잊을만한 즈음에 증인의 증언을 들으면서 도무지 그냥 있을 수 없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천하보다 귀한 것이 생명이라고 하시며 잃은 양 한마리를 찾으시던 예수님이셨는데, 왜 정인이는 그렇게 죽어야만 했는지? 그리고 어린 새싹이 꽃도 피워보기 전에 그렇게 처참하게 죽어야 했던 정인이는 나에게 누구며, 그 존재는 나와 어떻게 관계 맺고 연결되어 있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을 해 보았다.

정인이는 정말로 아무런 죄 없이 미움받고, 천대받고, 학대를 받아 피멍이 들고 배가 터지는 아픔과 고통을 당하면서도, 그 무지막지한 폭력 앞에 항변은커녕 변명 한마디조차 하지 못했으며, 양부모를 향해 한마디 미움도 원망도 못하고, 무기력하게 무참히 죽임을 당했던 정인이, 그는 바로 2000년 전에 억울하게 십자가에 못 박히며 엄청난 고통가운데 처참하게 죽어갔던 예수님의 죽음과 너무나 닮은 것 같아 등골이 오싹할 정도의 전율이 일어났다.

"그가 곤욕을 당하면서도 침묵을 지켰으니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사람 앞에서 잠잠한 양처럼 그의 입을 열지 않았다.(사53:7)"고 말한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처럼 정인이는 말없이 조용히 그렇게 죽어갔다.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슬펐을까? 얼마나 고독하고 힘들었을까?

정인이의 죽음은 이 시대의 악과 증오와 저주를 한 몸으로 담당한 희생의 죽음이었다. 오늘을 가리켜 '혐오(증오)사회'라고 한 그 누군가의 말처럼 우리의 사회는 통제하기 어려운 광기와 폭력이 잠재되어 있어서 시도 때도 없이 여기저기서, 이 사람 저사람에게서도, 아니 내 안에서도 그것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고 있다. 그래서 가정(이혼 등)과 사회가 파탄되고 있으며, 몸살을 앓고 있는 것 아닌가 말이다.

정인이의 죽음은 그 지독한 혐오의 폭력을 온몸으로 담당하면서 그렇게 하지 말라고, 왜 그토록 악하고, 미워하느냐고 울부짖는 외침, 즉 십자가 위에서의 예수님의 외침이었다. 그리고 왜 사랑하며 살지 못하느냐는 하나님의 말씀을 죽음으로, 온 생명으로 말했던 것이다.

"우리는 다 길 잃은 양처럼 제각기 잘못된 길로 갔으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든 사람의 죄를 그에게 담당시키셨다(사53:6)."는 말씀이 내게는 정인이를 두고 하신 예언처럼 들렸다.

그리고 정인이를 죽이는데 앞장선 자들은 저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똑 같은 기독교 종교인들이었다. 목사의 아들과 목사의 딸, 그들을 가르치고 양육한 기독교 학교와 교회들, 그리고 교회 지도자들과 그 완고한 기독교 신앙이었다.

회칠한 무덤과 같이 겉으로는 경건하지만 속으로는 탐욕과 이기적 욕망으로 썩은 내가 진동하는 오늘의 종교인들, 정직을 가르치나 스스로는 정직하지 않고, 사랑을 가르치나 자신들은 미움과 위선과 독선을 내뿜으며 사는 기독교인들, 아니 그렇게 산 내가 정인이를 죽였다.

그런 기독교 신앙으로 살아온 나요, 그 목사들 중에 하나인 나니까 말이다. 이제 나도 너도, 모든 기독교인들이 예수님께 참회의 기도를 드리듯이 정인이 앞에 무릎 꿇고 참회하면서, 더 이상 정인이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