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은 어떤 곳인가? 철저한 남성금지구역이다. 어렸을 때 목이 말라 물 마시려고 부엌에 들어가는 것을 엄마가 보면 이유도 묻지 않고 머슴아가 부엌에 드나든다고 대뜸 나무라기부터 먼저 했다. 그런 탓에 부엌에 갈 일이 있어도 눈치가 보였다.

여자들만의 공간, 그게 부엌이다. 밥하고 불 때는 일이야 기본이고, 부엌에서 목욕도 하고, 밥도 먹었고, 시집살이의 설움을 달랬다. 친정 엄마가 보고 싶어 꺼억꺼억 눈물 흘리며 울던 곳이다. 시집 온 날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들락거려야 하는 근무처가 부엌이었다.

여자들만의 공간이다 보니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 불안하다. 음식은 깨끗하게 조리하는지. 남은 음식은 버리지 않는지. 시부모 욕은 하지 않는지. 시집 흉은 보지 않는지.

부엌을 통제하고 감시하기 위해 소환된 것이 조왕신이다. 조왕은 인격신이 되다 보고 있으니 조신하게 처신하라는 무언의 겁박에 세뇌 당하고 만다. 조왕은 부엌에서 집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보고 들었다가 음력 섣달 스무사흘날이 되면(올해는 양력으로 2월4일) 아궁이로 들어가 굴뚝의 연기를 타고 옥황상제를 만나려 하늘로 간다. 가서 일 년 동안 그 집에서 일어난 일들을 낱낱이 보고한다.

조왕이 하늘로 가는 날 말씀 좀 잘 드려달라고 부뚜막에 성의껏 제사상을 차린다. 소위 뇌물을 먹이는 일이다. 지방에 따라서는 상위에 엿을 놓아두거나 아궁이에 엿을 바르기도 한다. 집안에 있었던 나쁜 일을 말할 때는 입이 들어붙어 말을 못하게 하려는 해학적 상징의 표현이다.

조왕은 설날 첫새벽이 되면 굴뚝을 통해 다시 부엌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섣달그믐날 밤에는 온 집안에 불을 밝혀 두고 모든 식구들이 뜬눈으로 밤을 세우며 조왕신을 기다리는 것이 설날의 풍습이다. 하늘에서 가져온 복을 자는 사람에게는 건너뛰기 때문에, 자면 눈썹이 센다고 어른들이 못 자게 겁을 주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