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에서 조리와 난방을 하려면 불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인류가 집이라는 구조를 가지면서 가장 신성시하게 여긴 것이 불이고, 불을 모시는 신앙에서 조왕신이 생겼다. 대개 물을 담은 종지를 부뚜막 안쪽에 모시는데 이를 '조왕보시기' 또는 '조왕중발'이라 한다. 주부가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우물에 가서 물을 길어와 조왕중발의 물을 새물로 갈아줌으로서 부엌일이 시작된다. 부엌은 불을 다루는 곳이기 때문에 불을 때기 전에 물부터 먼저 준비해야 된다는 지혜의 가르침이었다.

조왕은 여신(女神)이다. 그래서 '조왕각시' '조왕할매'라 부르고 부뚜막에 모시기 때문에 '부뚜막신'이라고도 한다. 재래식 부엌은 부뚜막이 중심이다. 그래서 부뚜막이 칼컬한가 아닌가에 따라 주부의 부지런함을 저울질했다. 조왕을 부뚜막에 모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에는 곳곳에 가신들이 살고 있다. 대들보에는 성주신, 큰방에는 삼신, 부엌에는 조왕신, 마당에는 터주신, 뒷간에는 측신 등이다. 모두 자기 구역에서 집안을 보살펴 준다. 재미있는 것은 성주신의 처가 조왕이고, 첩이 측신인데 둘은 사이가 나빠 멀수록 좋다. 이는 부엌과 변소는 위생상 대립관계임을 신화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이들 신들은 집집마다 모두 따로 있으며 철저하게 자기 집과 그 가족만 보살피는 것이 특징이다. 딴 집으로 이사를 가면 신들이 바뀌는 것이 아니고 본래의 신들이 따라간다. 다른 신들은 귀신같이 따라오지만 조왕신만은 특별히 모신다. 요즘도 이사할 때 솥단지부터 먼저 옮겨 놓는데, 밥 굶지 말고 부자되라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실은 불씨를 옮기는 의식에서 비롯됐다.

옛날에 가장 소중하게 다룬 것이 불씨였다. 며느리가 불씨를 꺼뜨리면 소박 맞을 정도였다. 불씨를 옮기는 의식에서 불의 상징인 솥단지를 먼저 옮기고, 솥단지를 옮기는 것은 '불의 신'인 조왕을 모시는 일이다. 조왕신의 이야기는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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