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젊은이가 있었다. 중학교 입학시험에 세번 떨어졌고, 대학교 입시도 두번 떨어진 뒤 세번째 항저우사범학교 영문과에 정원미달이 생겨 겨우 들어갔다. 대학졸업 후 취업을 하려고 시험을 치거나 서류를 낸 것이 무려 서른번이었지만 모두 다 떨어졌다. 다행이 영어를 잘한 탓에 취직도 안 되고 하니 하버드대나 가려고 원서를 냈지만 열번이나 거절당했다. '낙방'은 젊은 날의 요약된 인생이었다.

집도 가난했다. 할아버지가 국민당 시절 반혁명분자로 몰려 몰락한 집안이었고, 부모는 민속음악 배우로 활동했지만 1966년 문화대혁명 때 공연이 금지돼 생계조차 잇기 어려웠다. 풍채라도 훤칠하면 좋으련만 얼굴이 못생긴데다 163㎝의 작은 키 때문에 군대도 못 갔다.

30대에 영어강사로 제법 인기를 날리던 1995년, 미국 시애틀에서 처음 인터넷을 접한 후 그의 인생이 달라졌다. 컴퓨터래야 겨우 이메일이나 주고받을 수준이었던 그가 인터넷 온라인 결제사업을 생각한 것이다. 당시 온라인 거래는 대기업 중심이었는데 이를 중소기업화 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게임이 안 되는 아이템이었다.

창업 전 친구 24명에게 사업구상을 설명하자 23명이 '미쳤다'고 말했다. 그때 그는 유명한 말을 남긴다. "90%가 찬성하는 방안이 있다면 나는 그것을 쓰레기통에 갖다 버린다. 많은 사람들이 좋다는 계획이라면 분명 많은 사람들이 시도했을 것이고 그 기회는 우리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역발상은 오늘날 중국 상거래 시장점유율 80%를 차지하며, 시가총액 4200억달러(약473조7600억원)로 세계기업 자산순위 8위로 만든 알리바바그룹 창업주 마윈(馬雲) 이다. 마윈은 1964년생으로 개인 자산가치 순위는 중국부자 2위, 세계 부자 20위로 평가 받는다.

그런 그가 중국정부의 금융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가 괘씸죄로 구금됐다는 소문이 분분하더니 엊그제 실종 석달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런 게 사회주의 체제의 한 단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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