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 때리기
멍 때리기
  • 김창년 칼럼위원
  • 승인 2021.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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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년 윤앤김내과 원장
김창년 윤앤김내과 원장

요즘 병원을 찾는 환자들의 얼굴에는 근심이 많다. 코로나 사태로 일거리가 없어 놀고 있다는 사람들, 수입이 없어서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간다는 사람들, 손님이 없어서 가게 문을 닫아야 한다는 사람들까지.

이렇듯 근심이 많다 보니 없던 병들도 생긴다. 스트레스로 소화불량·위통·두통도 생기고 당뇨 환자들은 운동을 못하니 혈당도 올라가고 고혈압 환자들도 스트레스로 혈압이 올라간다.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코로나19로 환자도 줄고 운동도 못하고 다른 사람들과 만나지도 못하고 스트레스는 쌓여가고. 이러다보니 머리에 잡생각들이 자꾸 떠오른다.

최근 수일 전의 일부터 몇달 전, 심지어는 수십년 전의 일까지 떠오르다가 사라지다를 반복한다. 또는 내년에는 이게 문제인데. 10년 뒤에는 이럴 것 같은데 큰일이네….

안올지도 모르는 미래의 일들이 또 떠오르다가 사라지다를 반복한다. 이러고보니 나에게 주어진 현재가 오히려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 병원에 자주 오는 50대 여자 환자분이 있다. 고혈압과 당뇨병이 있어서 정기적으로 약을 타러 오는 것이다. 이 분은 오면 늘 걱정을 털어 놓는다. 10년 전에 큰 스트레스를 받고 난 뒤부터 이 병들이 생겨 고생을 한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사실 스트레스에 의해서만 고혈압·당뇨가 생기는 것이 아닌데도 사실과는 다르다. 하지만 이분은 10년전 스트레스가 병의 원인이고 원인 제공을 한 주위 사람들을 원망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현재 당뇨 관리를 잘 하지 않는다. 식습관·운동 습관 등을 아무리 교육해도 당은 잘 조절되지 않는다. 현재의 당뇨 관리가 제일 중요한데도 말이다.

다른 비슷한 연배의 여자분은 내당능 장애로 지속적인 체크만 받는 분이다. 내당능 장애는 정상 혈당보다 약간 높으나 당뇨병의 경우보다는 낮아 약물 치료는 필요없이 식이 조절만 해도 되는 상태를 말한다.

그런데 이 분이 TV에서 당뇨 합병증으로 발을 절단한 장면을 보고는 자신이 저렇게 될꺼라는 불안감을 늘 갖고 살아가고 있다. 하루에도 10번 이상씩 혈당을 재봐야 안심을 한다. 병원에서 괜찮다고 해도 자신의 앞날이 늘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우리는 과거와 미래에 사로 잡혀 현재 이 순간을 그냥 놓쳐버리는 경우를 많이 경험한다. 그러지 않으려고 하지만 이게 쉽지가 않다. 내 마음이지만 내 맘대로 잘 안된다.

그래서 한가지 훈련하는 법을 소개해 보기로 한다. '멍 때리기'를 자꾸 해보는 거다. 멍 때리기는 말 그대로 아무 생각을 안하고 머리를 비우는 훈련이다. 머리에 쌓여 있던 돌고 돌던 생각을 모두 잊고 주변 사물을 그저 물끄러미 쳐다보는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머리를 비우면 현재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동안 눈에 들어왔지만 머리에 남아있지 않았던 것들이 이제야 보이는 것이다. 책상 위 볼펜 한자루, 길거리 돌멩이, 푸른하늘의 흰구름, 고현천에서 자맥질하는 오리떼들.

머리 잡념을 비우고 나면 우리가 늘 마주치지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앞에 있는 사람의 주름 하나, 미소 하나까지도.

처음에는 잠깐씩 해서 조금씩 시간을 늘이다보면 어느새 과거와 미래에 살지 않고 현재에만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누군가가 한 얘기가 있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순간은 지금 순간이므로 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바로 앞의 사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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