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위에 나는 「우리의 사상혁명은 반드시 자유비평으로만 성공 할 수 있다.」는 것을 말 하였다.

자유 비평이 우리의 사상혁명에 무엇보다도 적당한 방법인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예가 있다.

어떤 이는 「혼신이 있다」 하고 어떤 이는 없다한다. 어떤 이는  「인생이 육체는 죽어도 영혼은 남아있어 천당이나 극락세계로 갈수 있다」하고 어떤 이는 「육체가 죽은 동시에 영혼으로 없어진다」 한다.

어떤 이는 예수가 하나님의 독생자라 하고 어떤 이는  그럴 리가 없다고 한다. 이것은 물론 몇 가지 보편한 예에 지나지 못하나, 세상에는 이와 같은 그 문자체만으로는 어떠한 자유비평으로 라도 결말을 볼 수 없는 문제가 적지아니하다.

한비자 현학편에 공자묵자(孔子墨子) 구도요순이(俱道堯舜而), 취합부동(聚合不動) 개자위(皆自謂), 진요순(眞堯舜) 요순불복생 (堯舜不復生), 장수사정(將誰使定) 유묵지성호(儒墨之誠乎)라는 일절이 있다.

마치 요순이 부활 할 수 없으니 유묵 어느 편의 말이 옳은지 알 수 없는 것같이 우리가 죽어보지 못하였고 우리가 하나님께 물어 보지도 못하였으니 그 어느 편이 옳다고 판단하기 힘들다. 그러면 우리는 이 난문을 어떤 방법으로 해결해야 할까?

논어에 지지위지지(知之?知之) 부지위부지(不知?不之), 시지야(是知也)라는 일절이 있으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반드시 한걸음 더 나아가 「어떠한 지(知)가 참 지일(知一)까? 어떠한 지식을 신앙(信仰) 하여야 될까?」 라고 반문하지 아니 할 수 없다.

여기에 대하여 존의주의(存疑主義) Agnovticsm의 원조 학쓰레 Huxley는 말하데 다만 증거 충분한 지식 이라야만 존의(存疑)할 수 있으나 신앙 할 수는 없다고 , 또 그가 그의 벗 킨스레(Kinclay)에게 답한 글 중에 아래와 같은 일절이 있다.

과학은 우리에게 말하는 것 같다, 사실 앞에 앉아서는 가지난 어린아이 같이 모두 들어 있는 성견을 버리고 겸손하게 자연을 따라가라.

물론 그가 너를 어떤 위험한 방면으로 끌고 가더라도 그렇지 아니하여서는 너는 무엇이라도 배울수 없다고 나는 결심하고 모험적으로 그의 교훈을 실행한 이후 처음으로 마음이 편하여 졌다.

이외에도 이와 유사한 주장은 적지 아니하다. 실험주의 Pragmatism의 비조 필스 C.S.Peince군은 항상 말하되, 나의 신철학방법은 별것 아니라 즉 과학실험실태도 그것이라고.

한비자 현학편

무참험이필지자(無參驗而必之者) 우야(遇也) 불능필이거지자(佛能必而據之者) 경야고 명거선왕 필정요(必定堯), 순자(舜者) 비우칙무야(非愚則誣也).

크리후얼터(W.K.Clifford) 강연집, 만일 여기에 한사람이 있어 자기의 안위와 유쾌를 위하야 아직 실제로 증명되지 못한 명제를 믿는다면 그것은 곳 신앙을 모욕하는 것이다. 설령 충분한 증거가 없는 신앙이 그로하여금 유쾌하게 한다 하더라도 그와 같은 유쾌는 하여도 유쾌하게 지내지 못한다.

우리가 인류에 대한 책임은 이와 같은 신앙을 염역하고 같이 방위하여야 자기가 걸리고 또 완성한 사람에게 걸리지 아니하도록 함에 있다. 어느 때 어느곳 어느 사람을 물론하고 충분한 증거가 없는 신앙은 모두 틀린 신앙이다.

과학 실험실의 태도 증거불충분한 지식 실제로 증명할 수 있는 지식만 믿는 태도,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과학적태도인 동시에 우리의 사상혁명에 불가결한 요소이다.

화학자는 물이 산소1(H), 수소2(O2)의 혼합물임을 믿고 물리학자는 물체에 열을 가하면 커지는것(물론 예외는 있으나)을 믿는다.

그러나 그네들은 누구나 그렇게 말하였다고 그렇게 믿는것도 아니오 또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믿는다고 그렇게 믿는 것도 아니다. 자기 자신이 물을 분해해야 H, O2를 얻어보았고 물체에 열을 가하여야 커지는 것을 심험해본 까닭이다.

사회상 모든 지식, 모든 신앙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반드시 이리하여야 될 것이다. 영혼이 육체를 떠나되 천당이나 극락세계를 가는 것을 실험해 보기 전에 그것을 믿어서는 안된다.

하나님이 있는 것을 실제로 증명하기 전에 그것을 믿어서는 안된다. ‘어찌해야 우상에게 빌면 복을 받을 수 있는가?’를 증명하기 전에는 빌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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