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부터 마주보는 일에 익숙하지 못한 것이 우리 민족이다. 만일 상대를 빤히 쳐다본다면 자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착각하거나, 아니면 무슨 유감이 있어 그런다고 시비가 일게 뻔하다. 네 사람이 앉아 먹을 수 있는 식탁에 누가 먼저 와서 혼자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그 앞자리에 가서 식사를 하는 일이란 거의 없다. 남과 눈이 마주치는 일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기차를 타도 가족이나 친구들이 아니라면 의자를 돌려 마주보고 앉는 일이 없다. 그래서 기차의 의자는 애당초 서로 눈이 마주치지 않게 한 방향으로 놓아두고 있다. 말을 할 때는 상대의 눈을 쳐다보라고 교과서에서는 그렇게 가르치고 있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특별한 사이가 아니라면 시선을 마주치려고 하지 않는다. 이를 두고 역사학자들은 농경사회의 특징으로 설명한다. 서양의 유목민들은 언제 양떼를 해칠 침입자가 나타날지 몰라 항상 주변을 주시해야 하지만, 농경사회에서는 상대를 예의주시하며 전의(戰意)나 긴장감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서 마주보는 것은 결례가 되지만 가까운 사이라면 사랑이 된다. 부모자식 사이가 그렇고, 부부사이가 그렇고, 친구나 연인사이가 그렇다. 사랑이란 마주보면서 확인한다. 보이지 않으면 몸이 멀어지고,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정(情)의 흐름이며 이치다. 사랑은 혼자서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전화하면 될 일을 왜 사람들은 굳이 문자를 이용할까? 커뮤니케이션에 서툰 탓이다. 전화는 주고받는 쌍방의 소통이 필요하다. 말하는 것이나 듣는 일이 서툴어지자 대화가 부담스러워지기 때문이다. 손가락으로 핸드폰에 글자를 치는 일은 귀신같이 잘하게 됐지만 그만큼 말할 기회는 줄어들고 말았다. 이제 사람들은 문자를 통해 서로 만나고, 문자를 통해 이야기 한다. 나의 입과 귀는 핸드폰이 되고, 나와 친구는 핸드폰이라는 기계속의 상대일 뿐이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점점 더 외로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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