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진국 거제공증사무소 변호사
석진국 거제공증사무소 변호사

사전 연명 의료 의향서는 생명의 연장을 위한 특정 치료방법 시행 여부에 대한 본인의 의사를 서면으로 미리 밝힌 공적 문서인데 2018년부터 시행하는 '연명의료결정법(Well Dying법)'에 그 절차와 효력이 정해져 있다. 죽음에 임박한 상황에서 본인의 의사가 불분명한 경우 가족이나 의료진은 의학기술을 동원해 생명을 연장해야 한다는 윤리적인 압박을 받는다. 그래서 미리 본인 의사를 밝혀둠으로써 불필요한 고통의 시간을 줄여서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며 위엄 있게 죽음에 이르도록 하자는 뜻이다.

치료효과 없이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행하는 의료행위로는 심폐소생술·인공호흡·항암제 투여·인공호흡기 착용 등이 해당한다. 실제 본인이 겪는 고통은 엄청나게 크다. 연명의료 중단은 회생 가능성이 없고 임종과정의 말기에 해당해 치료에도 반응하지 않는 환자를 대상으로 하며, 해당 질병으로는 암·후천성면역결핍증(AIDS)·만성폐쇄성폐질환 등이 있다.

작성 절차는, 먼저 인터넷 검색을 통해 가까운 건강보험공단 지사와 지정된 의료기관을 방문해 ①본인확인(신분증 지참) ②상담 및 작성(1대1 상담·6가지 관련사항·연명의료의 시행방법·중단 등·호스피스 설명) ③연명의료 정보시스템 등록 후 효력이 발생한다.

의향서 끝 부분 유의사항 제5항에 다음과 같은 사항이 적혀있다. 담당의사는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하기 전에 환자가 임종과정에 있는지 여부를 전문의와 함께 판단한다. 이 조항 때문에 의향서가 사실상 무력화 됐다. 의식불명 상태에서 병원에 가게 되면 의사 두 명이 이러한 결정을 하기는 쉽지 않다. 의사들 입장에서는 어떻든 최신 의료기술로 환자의 생명을 더 연장하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 일단 병원으로 실려 가면 모든 권한이 의사들에게 넘어간다. 통계에 의하면 그동안 30만명이 의향서를 썼지만 실제 시행은 몇백 건에 불과하다.

이러한 무력화를 막고 본인의 의향서대로 연명의료를 중단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가족들에게 이러한 의향서를 써뒀다는 사실을 알리고 충분한 대화를 해야 하며 회복 가능성이 없는 의식불명 상태가 되면 병원에 데려가지 말도록 분명히 이야기해둬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죽기 때문에 삶이 더욱 소중하다.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와 까르페 디엠(오늘을 붙잡아라)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삶도 쉽지 않지만 죽음도 마음대로 되지는 않는다. 불교의 고승들이 좌탈입망(坐脫立亡), 즉 앉거나 선 자세로 열반한 이야기가 많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런 흉내조차 낼  수 없기 때문에 의향서 작성 등의 절차가 필요하다.

평생 동안 조선독립을 위해 싸웠고 한국의 초대 부통령을 지낸 이시영. 노 혁명가의 죽음, 향년 85세. 위엄 있는 삶도 어렵지만 사람이 한명을 알고 자신의 죽음을 위엄 있게 맞기가 쉽지 않거늘, 그러나 선생은 그렇게 했다. 더는 목숨에 연연하지 않겠다며 일체의 병원 치료와 주사를 거부하고 스무 하루를 굶은 뒤 머리를 소년처럼 면도로 깨끗이 밀고 간호사를 불러 관장하고 중산복으로 갈아입은 다음 남들이 다 잠자는 새벽 두시 반에 조용히 식구들을 깨워 병원으로 갔다. 그리고 평소의 모습처럼 침대에 누워 도란도란 얘기를 하다 저세상으로 가시었다. 입가엔 손녀와 함께 짓던 미소 자국이 역력했으며 눈가엔 마지막 밝은 빛이 빛났다.

아일랜드의 극작가겸 소설가인 '버나드 쇼'는 1950년 95세의 나이에 임종을 앞두고 자신의 묘비명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보통 '우물쭈물 하다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로 번역돼 있지만 정확한 번역은 '이렇게 충분히 오래 살면 이렇게 될 줄 알았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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