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담 스님/금수사 주지

종교는 유일신적 종교와 법신론적 종교, 예언적 종교와 신화적 종교, 윤리적 종교와 자연적 종교라는 관념으로 종교를 대립시켜 논하는 것이 서구의 종교 분류법이고, 전자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며 후자는 동양의 제종교라고 보면 틀림없을 것이다.

이같이 양두화 된 두 종류의 유형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주류적인 기독교 서구종교 학자들에게 의해 분류된 것들이다.

그들은 동양의 제종교들의 풍부한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범주로 싸잡아 묶어 놓았고 동양 종교의 풍부한 내적인 핵심도 파악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종교로 인정하지 않았다.

서구 종교학자들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자연적이거나 신화적, 법신론적이지 않고 윤리적이요 예언적이고 단일신론적인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

이 세 종교 모두가 유일한 절대자 하나님, 유대교의 야훼, 이슬람교의 알라신에 구거하고 있다.

이 세 종교는 하나님이 본질적으로 인간을 초월하는 인격적인 하나님이 된다고 믿고 있지만 하나님의 의지는 인간에게 예언자를 통해서 계시되고 사람들로 하여금 윤리적인 종교의 원칙을 관찰 하도록 요구한다.

서구 종교의 관점으로 본다면 이 종교들은 윤리적이고 예언적이며 단일신론적인 종교가 정당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불교는 원래 인간을 초월한 절대 신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다. 불교에서는 공(空)을 가르치고 연기법(緣起法)을 가르친다. 이 가르침은 이 우주 즉 법계에 모든 것이 서로 상의, 상보 (相依, 相補)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아무도 독립적으로 또는 스스로 존재한다고 말할 수가 없다. 따라서 불교에서는 모든 것이 예외 없이 상대적이고 상관적이며 비본질적이고 가변적인 것일 뿐이다.

불교에서는 궁극적으로 공(空)과 진여(眞如) 자체도 스스로 존재하지 않으며 인간과 세속에 독립해 있거나 초월해 있지 않는 것으로 본다.

마치 인간이 신과 독립해서 존재 하지 않는 것처럼 신은 인간과 떨어져 존재 하지 않는다. 신과 인간은 상의 상보하고 전체적으로 상호연관 상호의존 되어 있다. 유일한신은 불교에서는 비실제적인 실체로서 인식된다.
즉 불교의 화엄경에서 말하는 하나는 여럿과 떨어져 존재하지 않으며 여럿은 하나와 떨어져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一)자와 다(多)자는 상호의존 상호상관 한다. 다(多)로부터 절대적인 일(一)자와 관 없이 다(多)일 뿐이다.

불교에서 궁극적인 실제는 절대자인 유일신도 아니고 일반적인 인간이 아니라, 또한 유일신과 인간사이의 관계성을 모든 것이 상호연관, 상호연기이다.

불교에서 본다면 세속의 인간들의 갈등과 고난, 불안은 상호의존, 상호연기의 법에 무지에서부터 나오는 것이고 자기중심 “에고”에서 나온다. 따라서 인간은 인간의 고난 속에서 구원하는 방법은 불교에서는 인간실존에 내재하는 무명(無明) 즉 무지를 뚫고 연기법에 대한 위대한 가르침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깨달음은 자기중심성 모든 것에 대한 집착, 인간에 의한 집착을 단절하는 데서 온다. 무엇보다. 거룩한 어떤 것 유일신 혹은 이와 같이 유사한 것들에 대한 집착의 형태를 극복해야만 한다.

연기법에 대한 자각은 우주 혹은 모든 만물의 상호의존, 상호연기에 대한 자각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자각은 동시에 자기의 본성 또는 자기의 본성에 대한 자각 없이 우주만물 즉 법계에 본성에 대한 자각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불교는 유일신, 신의 계시, 예언 혹은 신앙을 통한 구원을 말하지 않는다. 불교는 무지(無明)에서의 해방 연기법 참 자아에 대한 가르침을 말하고 또한, 불교는 자각의 종교라 할 것이다.

즉 연기법은 각 실체는 전적으로 각자의 특수성을 상실함이 없이 상호의존 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연기법의 요점은 불변적 실제 불멸의 자아성을 벗어나게 하는데 있다. 즉 무아의 실현에 달려 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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