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혜량 수필가
고혜량 수필가

참 많은 일들이 코로나19로 인해 일어났다. 몇 개월의 시간이 정지된 듯했지만 가혹하리만큼 많은 것들을 거둬가고 있다.

스치는 것마다 무엇으로도 지워지지 않을 몹쓸 상처를 남겼다. 그러나 이 고통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진행 중이다. 얼마나 많은 것을 잃어야만 끝이 날까. 아직도 빼앗아 갈 것들이 남았을까?
감사할 줄 모르는 인간의 오만함을 깨치려 하는 신(神)의 단죄(斷罪)라면, 충분히 깨닫고 반성했으니 제발 이제는 끝을 내어 달라고 이 세상의 모든 신에게 엎드려 간절히 기도드리고 싶은 심정이다.

여기저기 봄꽃 축제들이 취소됐다. 특히 신안군의 작은 섬 '임자도'의 튤립축제가 취소되며 남긴 사연은 아직도 가슴이 먹먹하다.

백만 송이 튤립이 싹둑싹둑 잘려 나간 영상을 보니 내 가슴 한편이 뭉텅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힘겹게 피어난 꽃이 사랑받지도 못한 채, 가장 아름다울 때 가위질로 난도 당했다. 꽃 한 송이 피우고자 등곱새가 되도록 고생하신 작은 섬마을의 주민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정성껏 가꾼 그 손으로 꽃을 잘라야 하는 심정은 등장질을 당한 것보다 더 기막힌 일이었는지 모른다.

조금이나마 섬마을에 보탬이 되고자 했던 일들이었지만, 이제는 제발 오지 말라는 간절한 메시지와 함께 댕강댕강 꽃 머리를 잘라버렸다. 살아야 하므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기에 내린 쉽지 않은 결정이었으리라. 우리 모두의 삶이 흔들리지 않아야 함이니….

오랜만의 외출이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다. '아차, 마스크를 하지 않았다' 챙긴다고 마음을 쓰는데도 잊어버리기 일쑤다. 얼른 현관문을 열고 뛰어 들어와 마스크를 챙겨 나오니 엘리베이터는 이미 아래층을 향하여 내려가고 있다. 정신없는 나를 탓해야 함에도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깊어진 봄 햇살과는 달리 북적이던 도심의 거리는 휑하다. 마스크를 통한 숨쉬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다. 안경에 낀 서리 탓에 눈앞이 뿌옇게 보이니 신산스럽기만 하다. 서리를 닦으려 안경을 벗으니 마스크 줄이 안경다리에 엉켜 달려 나온다.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불편함이다.

'세상에 나쁜 경험은 없다'라고 하지만 이번 사태만큼은 겪지 말아야 할 일이다. 죽음과 맞바꿀 수 있는 경험이란 것이 어디에 있을까. 목숨을 담보로 경험해야 할 일은 세상천지에 없건만 그런 경험을 하고 있다.

외출을 마치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간다. 아파트 정원의 벚나무가 어느새 풍성해진 녹색 잎으로 하늘을 가린다. 화단 돌 틈 사이의 까마중이며, 볼품없는 질경이 풀이며, 가까이 가기도전에 따가운 느낌에 지레 겁을 집어먹던 환삼덩굴까지도 예뻐 보인다.

소소한 일상이 그립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현관에 놓인 슬리퍼를 아무렇게나 끌고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일, 한적한 카페 구석진 자리에 앉아 한 잔의 커피를 마시는 일, 봐주는 사람 없어도 바람난 처녀처럼 곱게 화장을 하고, 지천인 꽃을 보며 나도 꽃인 양 들떠 있는 일.

일상의 날들이 이토록 소중한 날들이었음을 이제야 깨달은 우매함이 부끄럽다. 무심하게 보낸 일상들이 결코 평범한 날들이 아니었음을 코로나19가 알려준 뼈아픈 교훈이다.
산딸나무 하얀꽃 아래 애기똥풀이 오종종 모여 있다. 작아서 더욱 눈이 가는 노랑꽃. 애기똥풀의 '몰래주는 사랑'이란 꽃말처럼, 신(神)이 우리에게 인심 쓰듯 어느 순간 몰래 코로나를 데려가 주었으면 좋겠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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