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선 계룡수필 회원

“이장댁이여?”

그가 밭에 나간 날이면 나에게 붙는 호칭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 그리 부르는 것은 아니다. 농사꾼 마누라는 괜스레 멋쩍고, 그렇다고 농사를 짓지 않는 것도 아니니 마땅히 칭할 말이 없어서이다.

하여 옛날 마을 얘기를 하다가 우연히 이장댁이란 호칭이 나오게 되었고, 재미삼아 몇 차례 부르고 답한 것이 그리 되었다.

부재를 채 확인하기도 전에 잠자리에 있는 내게 그는 농을 걸어온다. 힘든 모양이다. 예초기를 등에 업고 구슬땀을 흘리고 있을 그의 모습이 선하게 그려진다. 주말이면 아침이슬이 깨기도 전에 밭에 나가는 그다.

며칠 전부터 무성하게 자란 풀을 어찌 뽑아야 할지 고민하던 그였다. 아침밥 한 술 뜨지 않고, 언제 나갔는지조차 모르는 나는 전화로 나누는 몇 마디 말로 미안함을 대신한다. 

퇴직금을 중도 정산할 때만 해도 땅을 사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우연찮게 기회가 온 것이 텃밭을 일구는 계기가 된 것이다. 씨를 뿌리고 가꾸는 일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기초지식이 없는 데다 정보까지 늦으니, 무엇 하나 제 시기에 심는 것이 없었다. 주변어른들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오긴 했으나 여전히 시행착오의 연속이다.

날짐승의 습격을 받는 것도 예사였다. 허수아비를 만들어 깡통을 매달아 두어도 수확은 늘 날짐승들의 몫이었다. 땅속에는 벌레들의 천국이었다. 턱 없이 많이 한 거름은 벌레들의 서식지로 안성맞춤이었다.

갈아엎기를 몇 차례 반복한 끝에 올 여름에는 수확의 기쁨도 맛보게 되었다. 수확이라 해야 풋호박 한 덩이, 고추와 가지 서 너 개가 전부였다. 투자하고 고생한 것에 비하면 너무나 작고 보잘 것 없었으나 기쁨은 컸다.

밭가에 사다 심은 과실수가 나이를 더해가면서 부쩍 자랐다. 해를 넘기면서 크고 작은 정원수들도 새로운 식구가 되었다. 몇 해 사이 꽤 많은 식구가 늘었다.

이렇게 되기까지 그의 고충이 어떠했으리라는 것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농사라면 어깨 너머로라도 본 적이 없는 그이기에. 

사실 나는 그가 밭에서 무얼 하는지 자세히 알지 못한다. 그에게 전해 듣는 몇 마디가 고작이다. 어쩌다 말동무라도 되어 줄 심산으로 따라나서는 날은 오히려 책망만 듣는다. 대대로 농사짓는 집안에서 자란 것을 생각해 보면 남편의 책망은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시골에서 자랐으면서도 수확과정은 물론 조리방법조차 모르는 내 꼴이 과히 딱하다 아니할 수 없다. 그러니 그냥 있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라는 말을 섭섭하게 여길 것이 못됨은 당연하다.  

“엉터리 이장댁이구먼.”

김밥에 커피 한 잔을 참으로 가져 온 나를 향해 그가 내뱉은 말이다. 컬컬한 목을 축이는 데는 역시 막걸리가 제격이라며 마른입을 다실 때는 영락없는 농부 모습이다.

마시지 않는 막걸리 타령을 하는 것으로 보아 기분이 좋아 보인다. 머슴이 따로 없다는 말을 하면서도 싫지 않는 모양이다.

아무리 봐도 농부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건만 황무지나 다를 바 없던 땅을 일구어 식구를 늘려 놓은 그가 그저 대단할 뿐이다.

내일은 무와 배추를 심는 그를 위해 풋고추 숭숭 썰어 넣고 된장찌개라도 끓여와야겠다.    
내려다보이는 마을에는 벌써 가을이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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