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윤석 거제시약사회장
고윤석 거제시약사회장

인류의 건강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의약품들은 그것을 개발한 연구자들에게 노벨상을 안겨줬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의약 개발자가 직접 상을 받는 예는 자취를 감췄다.

20세기 후반에는 제약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정말로 뛰어난 약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와 다방면에서 연구가 진행되며 의약품 이해의 폭이 넓어졌지만 오히려 현실적인 의약품 평가가 어렵기 때문에 노벨상이 줄어든 것으로 생각된다.

에이즈 치료제는 다른 어떤 노벨상 수상 연구에 절대 뒤지지 않을 정도로 위대한 약이지만 에이즈가 세상에 출현한 이후 벌써 30년이 지났고, 에이즈 치료제에 대한 기록도 점차 잊혀져 가고 있다. 코로나19처럼 새로운 감염증은 잇따라 출현하고 그때마다 온 나라를 술렁이게 만들고, 국경을 넘어 사실상 전 세계를 두려움에 떨게 한다. 그중에서도 에이즈의 출현은 말 그대로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놨다.

에이즈의 원인이 되는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는 아직도 완전히 해명되지 않았다. 최근까지 이뤄진 연구에 따르면 1920년대 콩고 수도에서 출현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러나 인류가 이 병의 존재를 인지한 때는 1981년이었다. 미국에서 젊은 남성 동성애자들 사이에서 폐렴의 일종으로 신종 질병이 돌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역학조사를 하자, 환자들 대부분이 면역작용을 하는 CD4 림프구가 감소해 정상적이라면 억제돼야 하는 균들에 의해 질병이 생기고 있었다. 동성애자 외에도 마약중독자·혈우병 환자 등이 많았고 이로 인해 에이즈 환자에 대한 깊은 편견이 만들어졌다.

1982년에 후천성 면역결핍증, 줄여서 'AIDS'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무렵에는 이미 전 세계 곳곳에 환자가 발생했다. 병 자체가 정체불명이라 치료법도 없었고, 발병하고 2년이 지나면 90% 가까이 사망하는 무서운 질환이었다. 실제로 전 세계 감염자 수는 7800만명을 넘어섰고, 사망자는 3900만명을 웃돌았다.

연구를 통해 에이즈가 마치 악마가 인류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정교하게 설계한 덫처럼 얄미울 정도로 잘 만들어진 구조임이 밝혀졌다. 감염 초기에는 전염성이 높고 감기와 비슷한 증상이 생긴다. 항체가 활동함에 따라 HIV양이 줄어들지만 바이러스는 사멸하지 않고 변이를 거듭하며 끈질기게 살아남는다. 에이즈는 잠복기간이 3~10년으로 꽤 길고 변이속도가 빨라 변종을 많이 만들어내기 때문에 지구상에 출현한지 30년이 넘은 지금도 제대로 된 에이즈 예방접종이 만들어지지 못했다. 코로나19 예방약이 힘든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바이러스는 종류가 너무 많고 다양한 바이러스가 공통으로 지닌 '급소'가 존재하지 않는다. 또 대다수의 경우, 바이러스가 직접 만드는 단백질은 몇 종에서 몇십 종에 지나지 않아 공략 포인트도 적다. 게다가 변이가 빠른 종류도 많아서 내성이 생길 가능성도 크다.

다양한 분야의 과학자들이 연구 노력한 결과, 에이즈와의 싸움에서 참패를 면할 수 있었다. 에이즈로 인한 사망자 수는 최고로 많았을 경우 보다 40% 이상 줄어들었고, 현재 전 세계에서 1500만명이 항HIV치료를 받고 있다.

에이즈 치료제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치료를 받고 있지만, 상당수의 치료제가 특허 보호를 받는 오리지널 약 때문에 막대한 치료비가 들다 보니 형편이 넉넉지 않은 환자들에게는 혜택이 돌아가지 않고 있다. 이러한 과학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HIV의 기세가 꺾이지 않고 신종 에이즈가 출현할 가능성도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전세계가 홍역을 앓고 있는 상황에서 잊혀진 에이즈 치료제 발견의 역사를 통해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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