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민 거제소방서 거제119안전센터 소방사
양해민 거제소방서 거제119안전센터 소방사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8살의 당시 어딜 가든 장래희망을 말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곤 했다.

언제 어디서든 커서 뭐가 되고 싶냐고 묻는 어른들의 질문에 능숙하게 대답을 해야 했고, 영어 시간에는 영어로 자기소개를 하는데 장래희망 얘기는 매번 필수였다. 미술 시간에는 미래의 내 모습을 그려 교실 뒷편에 전시하기도 했다.

딱히 꿈이 없던 내가 이러한 상황을 넘어가기 위해 오랜 고민 끝에 정한 답변용 장래희망은 바로 아버지의 직업인 ‘소방관’이었다.

“뜨거운 화재 현장에서 위험에 처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 어쩌구….”

어린 나이에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기특한 아이는 아니었고, 그냥 아버지의 직업이 소방관이라서 별 대수롭지 않게 그렇게 얘기하고 다녔던 것이었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다르게 주변의 반응은 아주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시작된 조기 교육의 효과는 대단했다. 어렸을 때부터 소방관이 되고 싶다고 여기저기 말한 덕에 나중엔 정말 소방관이 되고 싶어졌으니 말이다.

내 이런 꿈을 아버지는 탐탁하게 여기지 않아 하셨다. 어렸을 적 아버지는 2교대 근무로 24시간을 근무한 뒤 24시간을 쉬고, 또 24시간을 근무하고를 반복했다. 쉬는 날도 각종 행사와 비상소집으로 집에서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적었다.

그러나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지 않던 나는 청개구리처럼 계속 소방관이라는 꿈을 고집했다. 시간이 지나 고등학생이 돼서도 그 꿈은 굳건해 119 구급대원이 되기 위해 응급구조학과에 원서를 넣었다. 고등학교 졸업식 중에 응급구조학과 추가합격 했다는 전화를 받고 하루종일 가슴이 뛰어 새벽까지 잠을 못 잤던 기억이 난다.

‘소방관’이라는 직업은 여러 분야로 나뉜다. 내가 응급구조사 또는 간호사 자격증이 있어야 지원할 수 있는 구급대를 선택한 이유는 학창시절 같은 반에서 뇌전증을 앓던 친구가 발작을 일으키며 의식을 잃고 쓰러진 적이 있었는데, 그때 담임께 배웠던 응급처치로 친구를 도와줬던 경험이 굉장히 보람찬 기억으로 남아있어서다. 이후 불을 끄는 소방관도 훌륭하고 멋있지만, 응급처치를 하는 소방관이 더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소방관 시험에 합격한 날 정말 세상이 다 내 것인 마냥 기뻐 날뛰었다. 소방관이자 구급대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지금도 존재 자체로 가치를 지닌 소중한 생명들에게 한걸음 먼저 다가갈 수 있는 이 직업이 참 좋다.

물론 언제나 현실과 이상은 다르기에, 소방서가 내가 꿈꾸고 기대했던 일들만 일어나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술 취한 사람에게 아무 이유없이 욕설을 듣고, 때론 폭행을 당할 뻔도 한다. 쓰레기를 무단으로 소각하다 밭에 옮겨붙어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고 있을 때면 평생 지녀왔던 인류를 향한 사랑이 아주 조금은 식어가려고도 한다. 하지만 아버지가 먼저 걸어간 길을 뒤따라서 가고 있다는 자부심과 소방관으로서의 사명감이 나를 지치지 않고 걷게 한다.

훗날 후배들에게 ‘정년퇴직을 하게 되어 너무 아쉬운 선배’로 불리기 위해, 오늘도 출동지령에 귀를 기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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