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창수 지세포제일교회 목사
천창수 지세포제일교회 목사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강 주시기를 원하신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평강을 선포하시며 나타나셨다. 제자들을 전도하러 내보내실 때도 예수님은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그 집에 평안을 빌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강 주시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17)고 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얼마나 잘 먹고 좋은 환경에서 사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다. 천국은 우리가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다.

성령님께서 임하실 때 우리는 더 의롭게 된다. 더 하나님을 닮아가게 된다. 성령님께서 임하실 때 우리는 더 평강을 누리고 더 기쁨을 누리게 된다. 성령님께서 주시는 이런 의와 평강과 희락이 있을 때에 그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라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고백하는 말이 있다. 예수님을 믿으면 마음이 편하다는 것이다. 그 마음에 평강이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준다고 말씀하셨다. 이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고 하셨다. 이 평안은 바로 예수님의 평안이다.

다윗왕은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시3:5)하고 노래한다. 또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시4:8)하고 노래한다. 하나님의 평강을 노래하는 것이다.

다윗은 수많은 대적들로 둘러싸여 있다.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시3:1) 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다윗과 대적하며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했다. 남의 아내를 건드린 다윗이다. 왕이라고 하는 지위를 이용해서 남의 아내를 성폭행한 다윗이다. 게다가 그 죄를 감추기 위해서 그 여인의 남편을 죽게 만든 다윗이다.

이런 다윗이 어떻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겠는가? 이런 파렴치한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다윗을 비웃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하나님께 구원받을 자격이 없다'고. '하나님은 당신을 돕지 않을 것'이라고.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한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다윗은 그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을 붙들었다. 회개하며 엎드릴 때에 십자가의 보혈로 죄를 덮어주시는 하나님을 붙들었다. 그리고 부르짖는 소리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붙들었다. 부르짖을 때에 응답하셔서 방패가 되어 주시고, 수치와 부끄러움으로 떨구었던 머리를 다시 들게 해 주시는 하나님을 붙들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붙드심을 의지하며 누워서 자고 깨었다고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한다고 노래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평강이다.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하나님의 평강이 그 마음과 생각을 지키는 자만이 할 수 있는 고백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우리가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는 비결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하라는 것이다. 염려는 상황과 문제를 자꾸 생각하는 것이다. 반면에 기도는 하나님을 자꾸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항상 하나님께 가 있는 것이다.

일을 자꾸 생각하면 그 일이 커 보인다. 걱정과 염려가 생기고 마음에 평안 대신에 불안이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염려는 생각을 우리 일에 집중할 때 생겨난다.

우리 생각을 하나님께 집중하면 염려가 아니라 평강이 찾아온다. 모든 상황과 문제를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하나님의 평강 안에 거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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