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현 스님 / 옥천사

사람들이 종교를 믿으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종교가 어떤 신앙체계를 가지고 있는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신앙적 대상을 이해하는 일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 세계에는 많은 종교가 존재한다. 대부분의 종교는 절대자를 찬양하고 절대자의 구원을 바라는 형태이다.

반면에 불교에서의 부처님은 다른 종교와 같이 절대적힘을 가진 신앙의 존재가 아니다. 부처님이란 한 인간이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여 세상사의 모든 괴로움을 없애고 진리와 일체된 성인이기 때문이다.

불교에서 부처님을 부를 때 “석가모니 부처님”이라고 한다. 이것은 석가족의 위대한 성자라는 뜻으로 신과 같은 존재가 아니고 인간에게서 성인이 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지 부처님의 행적을 따라 수행한다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다른 종교와 다른 것이다. 그래서 불교 신자들이 법회에서 부처님께 귀의한다는 의식은 그분이 깨달은 진리를 따라자신도 그 길을 가겠다는 서원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불교는 불자들 스스로 석가모니 부처님이 걸으신 수행의 길을따라 자신도 수행하여 성인이되겠다는 종교인 것이다.

그러나 그 길은 너무 어렵다. 어려운 탓에 중생들인 우리는 꾀를 내어 그 분의 위대한 힘을 빌려 현실의 어려움을 해결하려 한다.

이런 탓에 많은 사찰에서 기도하는 불자들이 바라는 내용을 살펴보면 사업번창, 학업증인, 그리고 건강에 관한 것들로 요약될 수 있다. 이들의 이런기도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기도가 불교의전부는 아닌 것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불교는 불자 모두가 부처가 되겠다고 서원하고 실천하는 종교이다. 대개 이런 말을 하면 많은 불자들이 뒤로 물러서며 자신은 안 된다고 포기하는 경향이 많다.

이런 불자들을 위해 부처님이 우리에게 자신감을 준 것이 불성이다. 불성은 누구나 부처가 될수있는 성품이다.

그러나 일체가 무상한 현세에서 없어질 수 밖에 없는 물질에 대해 애착과 욕심을 가지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들이 가지고있는 지혜를 잃어버린다. 지혜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자신 안에 있는 불성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자신안에 그러한 불성이 있는지,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도 모르는 중생은 참으로 난감하다. 설명을 해줘도 이해가 되지 않고, 그렇다고 주입시킬 수도 없어 성질 급한 사람은 쉽게 포기해서 불교의 길에 들어서기가 어렵다.

사실 이런 사람일수록 좀더 시간을 갖고 자세히 가르쳐 줄 필요가 있다. 부처님도 45년동안 중생을 교화할 때 모든 중생들이 바로 깨달음을 얻은 것이 아니다.

정말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도 모르는 중생이었지만 부처님은 시간을 갖고 자신 속에 불성이 있음을 깨우쳐주었다. 그것이 법화경 신해품에 나오는 “돌아온 장자”의 비유이다.

우리는 불성의 주인이다. 우리는 무한히 맑고, 밝고, 착하고, 자비로운 존재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실을 믿지 않는다. 저 장자의 아들처럼 자꾸 의심하고 도망치려 한다.

그것은 자신이 존귀한 존재임을 모르고 매일같이 남에게 의존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이런 의존적 생활이 습관이 되어서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오기가 두려운 것이다.

또 자신을 돌아보면서 노력해야 하는 생활이 두려운 것이다. 쉽고 편하게 살아가고픈 욕망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종교를 믿는 일 가운데 중요한 것은 바로 기도이다.

기도는 자신의 종교적 신념이 이 땅에 펼쳐지도록 소망하는 일이다. 불자에게 모든 중생의 성불이 이루어지도록 바라는 마음은 가장 큰 기도이다.

종교를 신앙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내용을 기도한다. 왜냐하면 중생들은 현실을 살아가면서 많은 일을 격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런 일 속에서 기쁨을 얻기도하지만 기쁜 일보다는 대부분 괴로움이 많다.

이런 괴로움을 떨쳐버리기 위해 갖가지 행동을 하는데 음주와 자살등은 그런 괴로움을 피하기 위한 극단적인 방법이다. 이렇듯 인간생활에는 다양한 일들도 많고 그 성취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렇지만 주변을 돌아보면 희망을 성취한 사람들보다 이루지 못한 사람들이 훨씬 많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불평이 많고 다툼이 많아 세상을 오탁악세라 한다.

그런데 왜 기도는 이루어지는 일보다 안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일까? 이처럼 기도를 하는데 성취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기도를하면서 자신들의 마음에 허가심(虛假心)이 있기 때문이다.

허가심이란 “부정한 마음이다. 기도하는 도중 “진짜 이 기도가 성취될 수 있을까?” 또는 “부처님이 정말 나에게 가피력을 주실까?” 등등 자신의 자세와 부처님의 능력을 부정하는 마음이다.

이런 허가심을 가지면 어떤 착한 일을 하더라도 모두 독(毒)이 있는 것이 되어 아무리 정성을 다하여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는 반드시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전재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믿음이 없는 종교란 모래위의 성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신앙은 믿음에서 시작하고 기도는 그런 신앙심을 증장시킨다. 그것이 이웃을 위한 희망이건, 아니면 자신만을 위한 기복적인 기도라 하더라도 확고한 믿음이 없는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모두는 기도를 할 때 기복적인 기도이건, 인류를 위한 기도이건, 깨우침을 위한 기도이건 모두 이루어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런 믿음은 절대자에 대한 신뢰이다. 부처님은 우리가 원하는 바를 모두 알고, 모든 것을 성취하도록 인도하고, 큰 행복으로 인도하는 분이다. 중생들을 위해 우리가 아플 때는 의사가 되어 오고.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려고 스승으로 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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