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무덤·백비·비설이 대변하는 제주 4.3학살의 상처
애기무덤·백비·비설이 대변하는 제주 4.3학살의 상처
  • 백승태기자,김은아기자,이남숙기자
  • 승인 2020.07.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제적 관광도시 '제주' 다크투어로 치유에 나서다②
제주다크투어는 아픔을 치유하고 평화·상생을 위한 몸부림
제주도 북촌리 주민대학살 현장에 세워진 너븐숭이4.3기념관.

알뜨르비행장 일원과 송악산 인근에 일제강점기 유적들이 산재해 있다면 북촌리 등 동부권에는 4.3학살의 아픔이 곳곳에 묻어 있다. 4.3학살이 제주 전역에서 벌어졌지만 유독 북촌리 일원에서 대규모 학살이 많았다.

그중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 너븐숭이 기념관과 명림로 4.3 평화공원은 제주 4.3학살의 참혹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72주년을 맞은 제주 4.3학살은 현대사에서 지울 수 없는 상처의 역사로 남았으며, 아직도 현재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다. 그동안은 대학살과 강요된 침묵으로 얼룩져 있었고, 주민들은 눈물마저 죄가 되던 암울한 시대를 살아왔다. 인명피해와 물적피해는 물론 엄청난 육체적·정신적 후유증을 만든 4.3사건은 그 억울한 아픔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기에 지나간 역사가 아닌 것이다. 

그러기에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 의해 2008년 10월16일 공익재단인 제주4.3평화재단을 설립해 추가 진상조사와 희생자 추모 및 유족의 명예회복 사업 등을 하고 있다. 

이런 아픈 기억을 드러내는 것은 그동안 제주 사람들에겐 금기사항이었지만 이젠 분위기가 바뀌었다. 제주도는 4.3 유적을 지속적으로 발굴해 위령비를 세우고 억울하게 간 영령들을 위로하며 역사의 산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제주도는 4.3 학살과 함께 일제강점기 유적들도 다크투어리즘으로 승화시켜 어둡고 아픈 역사를 화해와 교육의 장으로 삼기 위해 노력 중이다. 진실과 화해, 평화와 상생의 새역사로 나아가기 위한 몸부림을 거듭하고 있다. 희생자 유족회는 매년 희생자를 위한 위령제도 지낸다.

제주4.3평화기념관에 희생자들의 사진이 전시되고 있다.
제주4.3평화기념관에 희생자들의 사진이 전시되고 있다.

제주도민 10%가 희생당한 4.3 학살 60년 동안 발설하면 안되는 금기어

제주 4.3 학살사건은 1947년 3월1일을 기점으로 해 1948년 4월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21일까지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미군정기에 발생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 이르기까지 7년여에 걸쳐 지속된, 한국현대사에서 한국전쟁 다음으로 인명 피해가 극심했던 비극적인 역사다. 당시 제주도민의 10%인 2만5000여명에서 3만명 정도가 희생됐다. 

1947년 3월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경찰·서북청년단의 탄압에 대한 저항으로 1948년 4월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봉기한 이래 1954년 9월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목숨을 잃었다.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 제주 4.3학살의 진상규명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북촌리에서는 1993년에 이르러서야 마을 원로회를 중심으로 희생자 조사에 나섰다, 6개월 동안 옛 지적도까지 동원한 1차 조사 결과 426명의 사망자 명단을 확인·공표했다. 1994년 2차 조사에서는 사망자 수가 479명으로 불어났다. 

제주 4.3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에 신고된 북촌리 4.3 희생자 수는 총 462명이고, 북촌리 위령비에는 443위의 희생자가 각명돼 있다. 그러나 이 숫자는 계속 유동적이며 진실 또한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1948년 4월 제주 전 지역에서 4.3학살이 자행됐지만 북촌리 주민들의 피해가 가장 컸다. 군인들은 마을에 불을 지르고, 주민들을 학교 마당과 인근 밭 등으로 데려가 학살하는 등 수백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원통한 죽음이었음에도 울음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60년이 흘러서야 진실이 역사의 조명을 받게 됐다. 그동안 제주도민에게 4.3은 발설해서는 안되는 금기단어였고, 왜곡되고 굴절된 역사였다.

북촌리 주민대학살 현장에 세워진 너븐숭이 4.3기념관은 당시 제주도민이 겪은 통한의 역사 현장을 공감하고 추모할 수 있도록 당시를 재현해 보여준다.

전시관에는 4.3사건과 관련한 그림과 만화, 집단 학살의 현장에서 나온 탄피 사진과 현장 사진 등 북촌리 집단 학살 사건의 진상을 알리는 다양한 전시물과 현기영 작가의 '순이삼촌' 초판 등을 만나 볼 수 있다. 소설 '순이삼촌' 중에는 "군인들이 이렇게 돼지 몰 듯 사람들을 몰고 우리 시야 밖으로 사라지고 나면 얼마 없어 일제사격 총소리가 콩 볶듯이 일어나곤 했다. 통곡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고 묘사하고 있다.

전시관 옆에 남겨진 애기무덤은 대학살 때 어린아이들의 시신을 임시매장한 곳이다. 당시 어른들의 시신은 살아남은 사람들에 의해 다른 곳에 안장됐지만 애기무덤은 그대로 지금까지 남아 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어서 무덤을 쌓을 시간도 없었던 아픈 역사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애기무덤 위에는 주민들이 가져다 놓은 아기옷·양말·장난감 등이 아픈 가슴을 더욱 짓누른다.

젖먹이 딸 가슴에 안은 채 희생된 모녀의 조각상에 가슴이 '먹먹'

제주시 봉개동에 거친오름 자락 12만평에 조성된 제주 4.3 평화공원은 4.3 사건 당시의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공간으로 2008년 개관했다. 

공원 안에는 제주 4.3 평화기념관·위령제단·위령탑·봉안관 등이 이곳을 지키고 있다. 

위령제단은 연중 4.3 희생자에 대해 참배를 진행하는 곳이며, 그들을 모시고 있는 위패봉안실이 따로 마련돼 있다. 봉안관은 4.3 유해발굴사업시기에 발굴된 396기의 유해 봉안이 있는데 각 비원에는 희생자의 성명과 성별, 당시 연령 등을 기록해 뒀다.

평화기념관은 크게 3개의 영역으로 구성돼 있다. 위령제단·추념 광장·위령탑·상징 조형물 등이 조성돼 있는 위령·추념 공간과 4·3 사료관이 조성되고 있는 역사 재현 공간, 그리고 4·3 문화관 등이 있다.  다양한 역사적 자료와 함께 예술가들의 그림·조각·설치작품 등이 4·3사건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평화기념관에는 총 6개의 전시관과 다랑쉬굴 특별 전시관이 있다. 

제1관은 주민들의 피신처로 활용됐다는 천연동굴을 주제로 한 역사관, 제2관은 해방과 좌절이라는 주제로 해방 후 3.1절 기념행사에서 사망한 6명의 민간인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제3관에서는 무장봉기와 분단 거부라는 주제로 1948년 4월3일에 일어난 무장봉기에 대한 이야기가 있고, 제4관에서는 학살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마지막으로 5관과 6관에서는 진상 규명 운동으로 상처를 극복해내는 과정과 관람 후의 소감문이 걸려 있다. 

평화기념관에 들어서면 당시 제주도 주민들이 피난처로 활용했던 동굴을 모티브로 한 긴 터널을 지나 아무것도 쓰여지지 않은 비문 없는 하얀 비석, 백비(白碑)가 가로놓여 있다. 아직도 제주 4.3이 올바르게 이름 지어지지 않은 역사임을 상징적으로 말해주면서 역사적 의의를 명확히 규정한 후 이름을 얻고 바로 일어서기를 기다리고 있다.

4·3평화공원에서 가장 가슴 아픈 조형물은 실제 희생자인 모녀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조각상 '비설'이다. 군인들에게 쫓기다 젖먹이 딸을 가슴에 안은 채 희생된 변병생 모녀의 이야기를 담은 조각상으로 흰 대리석으로 표현된 하얀 눈 위에 두 살난 젖먹이 딸을 품에 안은 채 죽어가는 어미의 모습을 형상화 했다. 대리석 위에 어지러이 찍힌 발자국이 그날의 참상을 말해주듯 생생해 가슴이 절로 먹먹해진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