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이지은 (130.3㎝×162㎝·Acrylic on canvas)

바람 부는 날, 하릴없이 골목을 헤매다 우연히 그를 만났다. 

보듬어 살고 싶어 옛 모양에 덧댄 새시가 생뚱맞지만 또 다른 정겨움으로 가슴 한 켠을 따뜻하게 했던 낡고 오래된 빨간 벽돌집.

생명 없는 낡은 것이 지닌 흔적마저도 외면하지 않고 새 모양을 갖춰주니 집의 기운이 살아난 듯 생명감마저 느껴졌다. 평범함과 촌스러움으로 별스러움이 없는 그것을 사는 법을 아는, 그리움의 서정을 아는, 추억의 의미를 헤아리는 사람들의 가슴이 다시 태어나게 해 아날로그적인 감성의 공간으로 만들어 놓았다. 

곡선으로 이어진 골목에서 한순간의 공간이동처럼 아스라한 추억 속으로 나를 이끌었던 벽돌집, 그 자리를 굳건히 지켜 한 시대의 기억으로 남아 있기 기원하며 내 작업속으로 그를 옮겨 놓는다.

 - 이지은의 작가 노트 中.

거제도의 토박이 작가 이지은의 작품은 늘 '위풍당당'이라는 말을 떠오르게 한다. 그녀의 붓질은 거침이 없으나 한편으로는 꼼꼼하고 섬세하며 구도가 주는 중압감은 강한 에너지를 느끼게 한다. 

그에 덧붙여 공간에 대한 관심과 그 안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힘차고 거칠 것 없는 그녀의 작업에 완급을 조절하고 색조의 흐름을 부드럽게 유도하고 있다. 결국 예술성은 작가의 삶에 대한 철학에서 비롯된다. 삶을 바라보는 굳건한 시선과 작업을 통해 연마된 조형성이 시간속에 녹아들면 작업의 심도는 깊어지게 마련인데 이후에 전개될 이지은 작가의 작업이 기대된다.

'시대의 보존 2020'은 하이퍼 리얼리즘과 같은 차가운 객관성을 유지하는 작업의 유형인데 작가 특유의 아날로그적인 노스텔지어가 각색돼 다소 감성적 경향으로 흐르는 느낌이 있다. 또 그러한 감성적 요소가 여느 사실적인 작품들과는 다른 개성으로 환원되면서 그녀만의 품격을 잘 유지하고 있다. 보고싶은 것만 보는 시대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창작의 주제로 선택하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라 생각한다. 작업의 고단함을 즐기는 작가, 이지은의 작업에 자꾸 눈이 간다.  

글 : 권용복 서양화가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