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형구 수필가

여태 왜 보지 못했을까? 조각공원 산책길을 다닌 지도 십년이 지났을 텐데 오늘에사 위세복 작가의 '새벽을 열다'라는 작품이 눈에 들어온다. 다각형의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구(球)인데 앞에 서면 면이 서로 반사되면서 수없이 많은 나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숱하게 이 앞을 지나다녔건만 이렇듯 신비스런 연출을 본 것은 오늘 처음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 했지. 관심이 있는 작품이 아니면 예사로 스쳐지나가는 일이 나도 거기서 거기일 뿐이다. 칠십여 년을 살아온 세월이 시들한 탓인지 많은 일에 무관심하고 무감동한 이 나이를 어쩔거나. 이제라도 좀 더 감동하고, 좀 더 깨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불현듯 인다.

내가 무얼 안다는 것은 그냥 껍데기에 불과할지 모른다. 내 전화번호부에 있는 숱한 이름들만 하더라도 나는 그들의 깊이를 다 알지 못한다. 가끔 만나서 밥 먹고, 세상사는 이야기 나누다 헤어지고 그러다가 시간이 흐르면 그냥 친구라고 여긴다. 친구라고 하면서도 어쩌다 오해가 생기면 풀고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내 스타일이 아니라면서 쉽게 돌아서버린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내 인생을 스쳐지나갔을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위해 매 순간의 부딪힘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부부의 연도 그렇다. 살면서 치열하게 부딪힐 때마다 수 십 번도 더 실망하며 살지 않았는가. 백년해로란 죽을 때까지 서로를 알아가면서 늙어가는 기간이다. 알다가도 모르는 순간이 닥쳤다고 이게 아니다하며 돌아서서는 안 된다. 기다림은 용서와 인내의 과정이다. 그런 힘든 과정을 거친 노부부들에게 물어보면 대부분은 '그 어려운 순간 헤어지기보다, 참고 견디기를 잘했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거울처럼 내 모습이 반사되고 있는 조각 작품 앞에서 물어본다. '거울아, 거울아 난 어떤 사람이니. 그런대로 괜찮지 않은가' 하고 더듬거리는데 '치~ 그건 착각'이라는 마음의 소리가 찡 울린다. 부끄럽다.

수첩에 적힌 수많은 이름 중, 내 아픔도 그의 속사정도 다 안다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는 친구가 과연 몇 명이나 될지. 한 사람 한 사람 조각 작품을 세밀히 보듯 다시 살펴봐야 할 것 같다. 저 사람은 왜 저리 실망스러울까. 왠지 나를 대함에 섭섭함이 묻어있어 가만히 되짚어보면 내가 그에게 어떻게 대했는지가 떠오른다. 타인이 나에게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 사람들 안에 비쳐진 내 모습을 짐작 할 수 있다. 누구든지 내가 좋아하면 그도 나를 좋아하기 마련이다.

조각 작품 앞을 그저 스쳐 지났듯이, 함부로 말하고 예사로 행동한 것 같다. 사람들에게 내가 어떻게 비쳐지고 있는 지를 깨달아야 한다.

동이 트는 새벽 바다는 하늘빛을 받아 황금빛으로 물들고, 파란 바다는 맑고 푸른 하늘색을 닮아 푸르다. 회색 하늘 아래는 회색바다가 놓여 있다. 노을이 지는 저녁바다는 온통 지는 해를 닮아 서럽도록 붉게 물든다. 모든 사물은 주는 대로 받고, 받은 만큼 되돌려 줄 뿐이다. 조각 작품은 이제라도 마음을 열고 깨어 있으라고 무언의 빛들을 반사하고 있다.

일주일 쯤 후였다. 이 작품 앞을 지나다 무심코 안을 들여다보았다. 스테인리스 구의 한 지점에 멈춘 금빛 태양이 반사되어 여기저기 금초롱 은초롱 빛을 발하고 있다. 아지랑이 아롱거리듯 수없이 많은 금빛 별들은 서로를 반사하여 반짝 반짝 빛을 내고 있다.

아름다운 영혼이 반사되면 사람들의 마음도 이처럼 기쁨으로 빛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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