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일제상흔 철거 대신 '다크투어'로 도시재생 삼아
군산, 일제상흔 철거 대신 '다크투어'로 도시재생 삼아
  • 거제신문 기획취재단
  • 승인 2020.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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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역사현장 찾아가는 거제 다크투어리즘②]일제 수탈 현장 군산, 어떤 시련 겪었나
쌀 수탈의 역사 '군산'…일본인에게는 황금의 도시 vs 조선인에게는 눈물의 도시

군산 다크투어리즘은 참혹한 역사의 현장에서 배운다는 측면 외에 일본 제국주의 건축물을 재활용 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근대건축물 등 산재한 일제 상흔을 고스란히 간직했지만 철거 대신 보존을 택해 도시재생의 기회로 삼았다.

수년에 걸친 도시재생사업으로 군산은 다크투어의 대표적 명소로 부각되고 있다. 거제와 달리 군산은 군산항을 중심으로 아픔의 역사 현장들이 비교적 밀집돼 있어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다크투어리즘으로 거듭나기에 충분한 요건들을 갖추고 있었다. 손을 댈 곳과 손대지 않을 곳을 가려 그대로의 군산을 잘 보여주는 도시재생이 이뤄졌다.

군산근대역사박물관
군산근대역사박물관

군산 다크투어는 군산항서 시작
역사현장 밀집…근대 상징물로 남아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군산은 일제강점기 때 성장과 수탈의 모순된 역사를 간직한 도시다.

호남평야를 낀 곡창지대인데다 일본과 비교적 가까운 해안에 위치한 군산은 일본제국주의의 수탈의 현장이 됐다. 일본인에겐 황금의 도시였지만, 조선인에겐 눈물의 도시였다.

1899년 부산·원산·제물포·경흥·목포·진남포에 이어 외국에 일곱 번째로 개항한 항구로 그 전까지는 작은 포구에 불과했다. 일본인들이 조선으로 이주하고 수탈이 본격화되는 1930년대부터 호남평야에서 생산되는 쌀의 집산지이자 일본으로 쌀을 수출하는 항구로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비극이 시작됐다.

뜬다리부두는 간조와 만조의 수위 변화와 무관하게 대형선박을 접안시키기 위해 조성한 시설로 뜬다리와 부유식 함체로 구성된 구조물이다.

일제는 군산 내항에 뜬다리부두를 만들고 시멘트포장도로와 철도 등 기반시설을 만들어 전국에서 수탈한 쌀과 어획물 등을 일본으로 실어 날랐다. 일본인들은 일본식 가옥 등을 짓고 군산 등 호남평야의 농지를 헐값에 사들여 지역민들을 소작농으로 내몰고 수탈과 핍박을 일삼으며 막대한 부를 쌓았다.

해방 당시 군산의 인구 5만8000여명 가운데 20%에 가까운 8000여명이 일본인일 정도였다. 일본인 대지주들은 토지를 담보로 한 고리대금업을 통해 많은 한국 농민을 소작농으로 전락시켰다. 농민들은 일본인이 운영하는 농장이나 정미소의 잡부 또는 쌀을 배에 실어 나르는 인부로 겨우 생계를 유지했다.

이러한 일제의 강압적 통제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치열한 삶을 살았던 1930년대 군산사람들의 모습이 군산근대역사박물관에 고스란히 재현돼 있다.

근대역사박물관 인근에는 일본인들이 세관으로 사용한 구 군산세관과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등록문화재 제372호)·조선은행 군산지점(등록문화재 제374호)으로 사용된 근대건축물이 다수 남아 있다. 이 건물들은 일본인이 특혜를 누리며 상권을 장악하는 발판이었고, 지금은 갤러리 등으로 사용된다.

해안가는 수탈한 쌀을 일본으로 실어가기 위해 만들었던 부잔교(뜬다리부두)도 아직 남아 아픔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현재 근대역사박물관이 위치한 인근에 세관·은행 등 일본 제국주의 수탈의 상징이었던 기관들이 몰려 있다.

주변에는 군산 신흥동 일본식 가옥인 히로쓰 가옥·일본식 사찰인 동국사·수탈편의를 위해 만든 내망굴 등도 있다. 대부분 국가등록문화재이거나 유형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군산지역 쌀 수탈의 상징인 쌀탑(사진 왼쪽)과 수탈한 쌀을 일본으로 실어가기 위해 만들었던 부잔교.
군산지역 쌀 수탈의 상징인 쌀탑(사진 왼쪽)과 수탈한 쌀을 일본으로 실어가기 위해 만들었던 부잔교.

다크투어는 군산 도시재생사업의 핵심

군산시는 2008년부터 이러한 근대문화를 활용한 도시재생에 본격 나섰다.

원도심을 살리는 도시재생의 핵심사업으로 도심 곳곳에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일제강점기 건축물 등을 관광자원화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원도심 살리기 도시재생사업을 하면서 일제시대 일본인 거주지였던 일대가 젊은이들과 학생 가족단위 관광객에게 인기 있는 명소로 부활하고 있다. 비극적 역사의 현장을 돌아보며 교훈을 얻기 위한 여행인 다크투어리즘을 도시재생사업과 접목해 군산이 다크투어의 명소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군산을 찾은 관광객이 2016년 200만명, 2017년 300만명으로 증가해 2018년부터 2019년까지는 2년 연속 500만명 돌파라는 기록을 세웠다.

일본강점기 수탈항으로 이용되면서 삶의 터전을 잃고 외곽으로 밀려났던 아픔을 도시재생과 다크투어를 통해 배우고 됐고, 고스란히 남아 있는 근대 건축물 등 일제의 아픈 유적은 관광자원이 돼 보고 찍고 즐기는 상품이 변했다.

군산은 군산항을 중심으로 아픔의 역사 현장들이 비교적 밀집돼 있어 시가지(사진 왼쪽)과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
군산은 군산항을 중심으로 아픔의 역사 현장들이 비교적 밀집돼 있어 시가지(사진 왼쪽)과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

어두운 과거로 떠나는 군산 다크투어

군산 다크투어는 군산항 근대역사박물관에서 시작한다. 박물관 오른편의 옛 군산세관 본관은 일제시대 미곡수탈의 전진기지로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이다.

서양식 단층건물로 서울역사(驛舍) 한국은행 본관 등과 함께 국내에 현존하는 서양고전주의 3대 건축물로 꼽힌다. 외관은 벨기에에서 들여왔다는 붉은 벽돌이지만 내부는 목조로 지어졌다. 붉은 벽돌과 어우러진 3개의 첨탑이 이국적이다. 뒤쪽에는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 역사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듯 하다.

박물관 왼편으로 발길을 옮기면 적산가옥인 장미갤러리, 1930년대 상업시설인 미즈상사 건물이 나란히 자리잡고 있다. 적색 나무기둥과 창틀로 장식된 외관이 독특하게 보인다. 지금은 각각 갤러리와 카페로 운영되고 있다.

바로 옆의 하얀 단층 건물은 옛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이다. 일제가 쌀을 반출하고 토지를 강매하기 위해 1907년 개설한 은행으로 건물은 1914년에 지어졌다. 지금은 근대미술관으로 변신해 지역작가의 전시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옆에는 1922년 준공된 일제 식민지배를 대표하는 국책 금융기관인 조선은행 건물이다. 지금은 근대건축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박물관 앞에서 만난 조시탁 군산시 문화관광 해설사는 "인근은 일제강점기 수탈의 현장이었고, 당시 일제는 3000톤급 배를 접안할 수 있는 뜬다리부두 6개를 만들어 쌀을 배에 싣고 가져갔다"면서 "이때 일본으로 가는 도중 쌀 품질이 떨어질까봐 70%는 현미로, 15%는 정미로 가져가고 남은 싸라기까지 휩쓸어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둘러볼 곳으로 신흥동 일본식가옥과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이성당·경암동 철길마을·해망굴 등을 추천했다.

군산 경암동 철길마을.
군산 경암동 철길마을.

걸어서 둘러본 군산의 민낯

'히로쓰 가옥'이라 불리는 신흥동 일본식 가옥은 불리는 현존하는 일본식 저택 중 원형이 가장 잘 남아 있는 건물이다. 군산에서 포목점과 농장을 운영하며 부를 쌓은 히로쓰가 건립한 2층 목조가옥으로  1층은 온돌방·부엌·식당·화장실이고, 2층에는 일식 다다미방이 있어 당시 일본인 지주의 생활양식을 엿볼 수 있다. 영화 '장군의 아들'과 '타짜'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히로쓰 가옥에서 5분 거리에는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일본식 사찰 동국사가 있다. 경사가 가파른 지붕, 촘촘한 창살에 단청 장식이 없는 대웅전은 흔히 보아온 우리 사찰과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앞마당에는 '권력에 편승하여 가해자 입장에서 포교했던 조동종 해외전도의 과오를 진심으로 사죄'한다는 일본 조동종의 참사문을 새긴 비석이 세워져 있다. 일본 에도시대의 특징을 나타낸 범종각 옆에는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져 있고 주변으로 대한해협을 상징하는 77개의 검정타일을 붙여 만든 사각 연못에 소녀상의 얼굴이 비치도록 설계돼 있다.

동국사에서 월명로 방향으로 5분만 걸으면 새롭게 단장한 일본식 가옥을 여러 채 볼 수 있다. 다다미방과 게스트하우스·펜션 등으로 구성된 숙박시설 '고우당'이다. 고우당을 중심으로 역시 일본풍의 새로운 카페와 음식점도 여럿 들어서고 있다. 옛모습으로 복원하는 가옥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곳에서 박물관 방향으로 올라가면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지로 유명한 초원사진관이다. 기념사진을 찍고 데이트를 즐기는 젊은이들의 발길이 꾸준하다.

조금 떨어진 이성당은 대한민국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빵집으로 전국적인 맛집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일본인에 의해 시작돼 현재는 지역민이 운영중이며, 평일 한낮에도 길게 줄을 서야 입장할 수 있을 정도다.

여행 도중 허기가 진다면 중국집을 많이 찾는다. 군산의 별미 중 하나인 짬봉은 해산물이 풍부하고 국물이 맛있어 줄어 서서 먹을 정도로 인기다. 조시탁 해설가와 화교들은 돼지고기를 넣은 빨갛고 매운 짬봉은 군산이 시초라고 주장하다. 구이나 찜으로 먹는 박대정식도 많이 찾는 특산 음식이다.

경암동 철길마을도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인기다. 해방 1년 전인 1944년 4월 신문 용지를 만드는 페이퍼 코리아 공장(옛 세풍제지)과 군산역을 잇던 2.5㎞ 길이의 철로가 생겼고, 주변에는 앉은뱅이 집들이 다닥다닥 붙었다.

2008년 기차가 멈춘 뒤 철길 주변에 다닥다닥 붙은 집들은 관광객을 맞이하는 가게로 바뀌기도 했다. 영화 촬영장소이기도 한 이곳은 인생샷을 찍는 젊은이들의 포토존으로도 유명하다.

거제 전역에 산재한 아픈 역사…하나의 테마로 묶는 지혜 필요

군산은 도시재생사업을 통한 다크투어리즘으로 부각되는 도시다. 일제강점기 아픔의 역사와 개항기 유산을 활용해 원심도심을 역사와 관광의 테마가로 조성했다.

디자인 특화 건물을 짓고 근대역사박물관과 진포해전을 테마로 한 해양공원도 만들었다. 일제 잔재 건물과 유적들을  활용해 관광객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특유의 공간성과 역사적 정체성을 잘 살리려는 노력들이 돋보였다.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려는 주민들의 자발적인 노력도 이어졌다.

군산 다크투어리즘은 일제강점기 아픈 역사에 치우쳐 있고 상흔 또한 군산항을 중심으로 밀집돼 있다. 해망로 건너편은 당시 일본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곳으로, 지금의 신흥동·월명동·영화동 일대가 여기에 속한다. 행정구역상 여러 동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실제로는 근대역사박물관에서 반경 1㎞ 남짓으로 천천히 걸어도 20여분이면 충분히 닿을 수 있는 위치다.

반면 거제의 아픈 역사는 고려시대부터 6.25전쟁까지 거제 전지역에 폭넓게 분포하고 소재 또한 다양하다. 거제 전 지역에 산재한 아픈 역사를 한데 묶어 현대적 감각으로 정비해 다크투어리즘으로 새롭게 변신하는 노력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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