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균 초대 2대 민선교육감
신용균 초대 2대 민선교육감

거제는 일본과 가까운 곳으로 고려 시대부터 왜구의 침입이 잦았다.

1592년 임진란 때. 이순신 장군이 맨 처음 왜적을 무찔러 승리한 곳이 옥포 해전이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위업을 기리기 위해 1953년 거제 복군과 더불어 거제군 교육구청의 주관으로 초대 2대 민선 신용균(辛蓉均)교육감이 충무공의 애국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아주리(鵝州里) 당등산 거북산재 정상에 1957년 6월12일(음력 5월7일) 기념탑을 건립하고, 제막식과 아울러 제례봉행 및 각종 민속 예술행사를 하였다.

이 행사는 이 충무공의 정신을 계승하고 군민 단합과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범 군민적인 행사였다.

행사의 규모는 전 군민의 문화예술 행사로, 교통이 불편한데도 아침 일찍부터 걸어서 이 행사에 참석했다. 그럴 때 애국적인국민정신과 학생들의 충효사상은 만난을 극복하는 뿌리가 되었다.

이 탑은 애국충정과 충효사상을 고취시키는 교육의 도장으로 삼고자 신용균 교육감이 그 어려운 시기에 역점 사업으로 시작한 것이다. 당시의 어려운 재정 때문에 여러해 동안 고생을 하면서 각계각층에 호소하여 도움을 받기도 했고, 교육감 형제분과 지인들로부터 도움을 받았고, 거제지역 학생들의 정성을 모은 건립 성금으로 기념탑을 세웠다.

그 당시 거제경제 사정과 생활환경은 열악하여 먹고 살기도 어려울 때 였고, 전쟁으로 인한 피해와 잦은 흉년으로 인해서 궁핍한 생활을 하였다. 그럴 때, 신용균 교육감이 나라와 민족을 위한 애국 충정의 마음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군민들을 선도하여 옥포 대승첩 기념탑을 세우게 된 것은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큰 업적이다.

기념탑이 서고 난 뒤에 1963년 6월27일 장목진의 비장청을 뜯어다가 옥포정을 지어 낙성하였다.

매년 양력 5월7일 옥포 대승첩 기년제전과 문화예술행사를 했다. 기념탑이 있었던 곳은 아주리 해안가 툭 튀어나온 독뫼산 정상이다. 이곳에는 옛날 신라시대 성이 있었고, 성 안에 탑과 당집이 있었다. 주변은 넓고, 산정상인데도 우물이 있었다.

어려운 경제사정과 불편한 교통에도, 옥포기념탑 설립 준공 기념행사에 많은 사람이 참석하여, 이순신 장군의 우국충정의 애국정신을 추모 하는 기념행사가 전군민이 참석한 기념축제로 승화하였다.

첫해 제례봉행은 거제유림에서 하였고, 헌관으로 초헌관에는 신용균 교육감이 하였다. 그 다음해에는 이효원 거제군수가 초헌관을 했다.

그 당시는 교통사정이 어려웠다. 산 고개를 넘어서 지름길을 이용하여 걸어서 다녔다. 그럴 때 거제의 초··고등학생과 군민들이 많이 참석하였다. 기념제전이 끝나고 나면, 산 정상 부근에서 초·중·고등학생의 한글 백일장이 있었다.

신용균 교육감이 학생들에게 이순신 장군의 얼을 기리기 위해서 한글백일장과 미술·전통무용 등을 하게 하였다. 이것이 시초가 되어 지금은 다양한 문화 예술행사가 2일간 이루어지고 있다.

기념탑이 준공 되고 나서, 임진란과 관련된 여수·순천·남해·통영·사천 등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견학을 왔다.

신용균 교육감이 새운 옥포대승첩 기념탑의 현재규모로 볼 때도, 경제가 발전한 이런 시기도 세우기 어려운 것을 군민의 애국심으로 세우게 한 신용균 교육감의 업적은 참으로 대단했다.

1973년 아주리 옥포조선소 안에 있는 옥포대승첩 기념탐.
1973년 아주리 옥포조선소 안에 있는 옥포대승첩 기념탐.

옥포조선소(대우조선) 건립으로 현 위치로 이설

1973년 10월11일 옥포조선소(대우조선)기공식을 할 때, 박정희대통령이 기공식이 끝난 후 남궁연 회장과 홍난희 소장에게 당등산을 그대로 보존하여, 외국인 숙소와 휴게소로 이용하라고 했는데, 그 당시 항구를 매립하면서 남궁연 회장이 자금이 부족하여 먼 곳에서 매립토를 가져올 형편이 되지 않아서, 여러 차례 박 대통령에게 당등산을 허물어 사용할 것을 요구하여 간신이 승낙을 받아 당등산이 허물어지면서 옥포대승첩 기념탑과 옥포정 이설이 논의되었다.

옥포 기념탑 이설로 지역적인 갈등

당등산에 있던 기념탑을 옮기려고 하자 지역적인 갈등이 있었다.

그때 능포 주민들은 능포 뒤 산으로 옮기자고 했고, 옥포 사람들은 옥포 조라 뒤산 옥포 해전 때 왜적을 무지른 승판치로 옮기자고 하였으나. 당등산과 가까운 아주 주변으로 옮기는데 지역주민들의 합의로 현 위치인 대우조선소 서쪽 도로변으로 옮기게 되었다. 이때 처음에는 5천평의 부지를 내어 놓겠다고 했다가, 차츰 줄어들면서 2천평을 거제군에 기부채납 하겠다고 했는데, 천평도 못되어 장소가 협소하여 각종 행사를 하기가 어려웠다.

이곳으로 옮기고 첫 기념제는 1975년 5월 7일부터 하기 시작하여, 1989년 1월1일 부로 장승포기 시가 되고 나서, 아주에 있던 탑을 옮기려고 했으나. 지역 주민들의 반대로 옮기지 못하고, 팔랑포 뒤산 인 현 위치에 기념탑과 기념관을 새로 짖고, 1996년 6월22일 첫 기념제전 과 문화 예술 행사를 했다. 그 후부터 아주에 있는 기념탑과 옥포정은 조용한 공원지대가 되었다.

그 어려운 시기에 전 군민의 정성을 쏟아 새워 놓은 기념탑과 옥포정이 있는 아주동 대우조선소가 있는 이곳에 신용균 교육감의 공로 비를 세우고 매년 간단한 기념제를 하면서 그 분의 업적과 그 당시의 역사를 재 조명해야 한다.

그때 그 시절 만난을 무릅쓰고 이루어 놓은 신용균 교육감의 공적을 모르고 넘겨서는 안 된다. 늦은 감이 있지만, 이분의 공적과 그 당시의 기록을 비문에 남겨서 정신교육장이 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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