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진국 거제공증사무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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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모리'는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의 라틴어인데 '나 자신이 언제든 죽을 수 있고 꼭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카르페 디엠'으로 살아가야 한다. 즉 '현재를 즐기라.' '행복을 내일로 연기하지 말라.'

묘비명은 보통 후손이 새기는 것인데 가끔은 자신이 미리 준비해 두는 경우도 있다.

1925년 노벨상 수상자 조지 버나드 쇼(Geor ge Bernard Shaw)는 1950년 95세의 나이에 사망했는데 유언에는 묘비에 새길 문구도 있었다. 'I knew if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우물쭈물 하다가 이렇게 끝날 줄 알았다'라는 번역으로 제법 유명한데 조금 오역이라고 할 수 있고 사실 정확히 번역하자면 '살만큼 살면 이리 될 줄 알았다'이다.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는 '노인과 바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데 4번의 결혼과 3번의 이혼을 했다. 친구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피츠제럴드는 "헤밍웨이는 큰 책을 하나 내놓을 때마다 새 부인이 필요했다"고 농담을 했다. 헤밍웨이는 조울증으로 자살했는데 묘비명에는 '일어나지 못해 미안하오'라고 적혀 있다. 제법 싸가지 있는 문구이고 예의가 바르다.

미국 남북전쟁에서 25만명의 목숨이 사라졌는데 가장 치열한 게티즈버그 전투에서는 사흘간의 전투로 8천 명이 사망했다.

에이브러험 링컨(1809~1865)은 그곳 묘지 준공식에서 이 유명한 연설을 했다. "우리에게 남겨진 그 위대한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우리는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겠다고 이 자리에서 엄숙히 다짐해야 합니다. 신의 가호 아래 이 나라에 자유가 새로이 탄생하고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가 이 지상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기업인 앤드루 카네기(1835~1919)는 철강왕으로 불렸는데 '자기보다 훌륭한 사람들을 곁에 모으는 기술을 가졌던 사람이 여기 잠들다',  공산당 선언을 한 칼 마르크스(1818~1883)는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시인 라퐁텐(1621~1695)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갔노라' 공수래 공수거…,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1883~1924)는 '내면을 사랑한 이 사람에게 고뇌는 일상이었고…글쓰기는 구원을 향한 간절한 기도의 한 형식이었다'라고 적혀 있다.

또 시인 에밀리 디킨슨(1830~1886)은 '돌아오라는 부름을 받았다', 걸레 스님으로 불린 중광스님의 묘비명은 '괜히 왔다 간다', 소설 '적과 흑'을 쓴 스탕달(1783~1842)은 '살았노라 썼노라 사랑했노라'라고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라고 외친 로마의 장군 캐사르의 말을 패러디 했다.

종교인 김수환 추기경은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이 없어라', 시인 버지니아 울프 (1882~1941)는 '너에 맞서 자신을 던지리라, 물러서지 않고 꿋꿋하게, 오 죽음이여!', 작가 조셉 콘래드(1857~1924)는 '수고를 마친 뒤의 잠, 폭풍우 치는 바다 이후의 항구, 전쟁 이후의 안락, 삶 다음의 죽음은 큰 기쁨이다'라고 했다.

시인 박인환은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1956, 명동 술집 경상도집에서 즉흥적으로 작사했다는 '세월이 가면'에 나오는 문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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