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야 새야
새야 새야
  • 서정윤 수필가
  • 승인 2020.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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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윤 수필가
서정윤 수필가

저만치 방음벽이 보인다. 서너 걸음만 더 가면 또 만나게 되겠지. 차라리 눈을 감는다. 왔던 길을 뒤돌아서 다른 길로 갈까. 설마 오늘은 별 일 없겠지. 출근 때마다 항상 이 자리만 오면 멈칫거린다.

쓸데없는 고민을 하면서도 매일 아침 이 도로를 걷는다. 차량도 많지 않은데다 한적하고 깨끗해서다. 밑에 위치한 아파트 옆을 따라가면 이보다 더 좋은 오솔길도 있는데 꼭 수행자의 구도처럼 이곳을 들어선다.

아마도 볕이 좋아서 이 길을 선호하는 것 같다. 새로 난 포장로를 끼고 있는 길이라 가로수도 큰 건물도 없다. 햇살에 그늘이 없어서 겨울에 걷기는 안성맞춤이다. 계곡 위로 세워진 높고 긴 방음벽이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주니 더 따뜻하고 아늑하다.

두어 달 전쯤부터다. 일주일에 서너 번 아침마다 장례를 치른다. 방음벽에 부딪혀 떨어져 죽은 새의 시체들을 묻어준다.

얼어붙은 야산의 편편한 땅을 골라 흙을 둥그렇게 파서 묻어 주는 게 전부다. 그 순간만큼은 나도 새가되어 나름 엄숙해진다. 염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가 상여를 들고 옮겼다가 종내는 소리까지 한다.

누가 시키지도, 꼭 내가 안 해도 될 일을 형(刑)을 받듯이 치른다. 사람이 편하게 지내자고 만들어 놓은 장치에 죄 없이 죽어간 여린 생명이 가련해서.

"잘 가라. 더 좋은 세상으로 가서 훨훨 날아라." 속으로 새기듯이 이 말밖에 해줄 게 없다.

인간의 이기는 날마다 죄 없는 생명을 죽인다. 처음엔 한 마리였다. 다음날은 또 그 다음날은 새의 사체가 자꾸 불어났다. 영혼을 잃은 작은 몸뚱이들이 땅에 떨어져 나뒹구는 모습을 마주하기가 고역이다. 춥고 긴 겨울밤을 싸늘하게 식어 갔을 게다. 본능에 의해 그저 날고자 했던게 죽음을 부를 일인가. 처음엔 망연자실 했다. 겪어보지 않은 일이라 두렵고 떨렸지만 지금은 익숙해졌다. 죽음을 치르는게 익숙하다니 아이러니다.

기를 쓰고 날고자 할 때가 있었다. 벽에 부딪히면 부딪힐수록 더 기를 쓰고 덤볐다. 욕심에 눈이 멀어 투자금액을 다 날렸다. 그때 지역경기가 한참 좋아서 부동산이 고공행진을 할 때다. 뭐든 투자하면 금방 부자가 될 줄 알았다. 새의 눈에 보이지 않는 방음벽처럼 건설회사의 솔깃한 술수가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나의 어리석음으로 그들의 빈 지갑을 채워줬다는 걸 알았을 땐 거대한 조직은 방음벽 안쪽에서 내 신음소리를 차단시켰다. 잃은 재산을 되찾으려 거대한 그들의 벽에 부딪혀 매일매일 피투성이가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 힘이 빠져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때 바닥을 치는 고통을 겪으면서 차라리 새가 되고 싶었다. 그 조직의 벽이 너무 단단해서 다 내려놓고 어디든 훨훨 날아가고 싶었다.

새는 자기가 나는 가속도로 창공을 날았을 것이다. 생명을 위협하는 방해물이 있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을 게다. 그때의 나처럼. 아침마다 제 명을 다하지 못한 이름 모를 새의 죽음을 보며 날마다 죽음을 떠올리던 그때가 생각난다. 머리를 벽에 박고 가슴을 치며 뒹굴던 나도 어쩌면 가엽게 죽어가는 저 새와 같았다는 걸.

장갑 낀 손으로 싸늘한 주검들을 집어 든다. 바람에 흔들리는 꽃에 앉아서 지저귀거나 여린 날개를 펴고 비상할 때의 그 신비로움을 접은 날개 속에 감추고 손에 잡힌다.

살아서는 절대로 내 손에 잡혀주지 않은 세상의 귀한 존재가 아니던가. 화장품이 든 파우치를 꺼내 핸드백 속에 쏟아 붓고 관에 넣듯이 조심스럽게 담았다. 어제 빌었던 그 간절한 기도를 다시 되풀이 한다.

"새야 새야, 다시는 인간이 사는 세상엔 오지마라. 먼 이야기 속에서나 전해오는 전설 속에서만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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