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봉권 난민대책위원장
△신봉권 난민대책위원장

거제도포로수용소 복원에 기여한 유공자들을 위해 유공비 건립이 시급하다.

현재의 거제도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이 있기까지 여러 사람들의 공이 있었고, 이들을 위한 유공비를 건립해 업적을 기리고 추모행사를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거제도포로수용소는 6.25전쟁으로 포로가 된 북한군 포로와 중공군 포로를 수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1950년 11월 말 고현 서문에서 시작해 수월·해명·양정지역에 17만6000여명의 포로가 있었다.

1953년 7월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되고 포로들이 떠난 후 포로수용소로 인해 이주했었던 주민들을 복귀시키면서 주민대책 복귀위원회가 연초에 설치됐다. 복귀위원회 위원장은 신봉권씨가 맡았다. 회원은 50명이었다.

복구비 1억2000만원을 지원받아 문동저수지를 만들어 식수로 사용했고 복구작업도 시작됐다. 누구 땅인지 분간할 수 없었던 것을 8개월 동안 측량해 구획정리를 했고, 공공용지로 새로운 도로도 만들었다. 공공부지를 만들어 군청과 학교·시장·고현출장소(현 거제시공공청사)·보건소·파출소 등을 건립했다. 포로수용소로 인해 떠나 살았던 주민 380세대의 주택도 복구했다. 당시 장승포에 있던 거제군청도 고현에 두게 됐다.

고현이 군청 소재지로 발전하면서 없어질 위기에 놓였던 포로수용소를 1983년 8월6일 경남문화재자료 99호로 지정했다.

복원사업이 있기까지 신봉권·유상언·배영도씨의 업적이 많았다. 신봉권·김해정·김재윤씨 등이 포로수용소 복원을 위해 김한배 군수에게 요청해 1989년 10월 포로수용소 복원계획을 세워 임시유적관 50평을 건립했다.

1994년 1월 양정식 군수가 국고보조사업으로 7억원과 토지보상금 4억6000만원을 받아 본격적인 복구사업이 시작됐다. 국고보조사업으로 채택되기까지는 거제출신 이한홍 문화재청 국장의 노력이 뒤따랐다. 신봉권씨는 영산신씨 용산문중 재실과 묘지이설을 허락했고, 신덕생씨 소유 토지를 매입해 2000평의 부지를 마련했다.

김한배 군수 때 시작된 임시 유적관을 토대로 양정식 군수가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해 이영돈 군수와 김계현 시장을 거쳐 조상도 시장이 마무리했다.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