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점심 때 짬뽕을 같이 먹자고 해서 식당으로 갔다. 그런데 짬뽕 종류가 다섯 가지나 된다. 아예 고춧가루를 넣지 않은 짬뽕, 보통 짬뽕, 조금 매운(1단계) 짬뽕, 조금 더 매운(2단계) 짬뽕, 아주 매운(3단계) 짬뽕으로 식성에 따라 주문하면 된다. 나는 보통 짬뽕을 시켰고, 친구는 조금 더 매운 2단계 짬뽕을 시켰다. 식사 중에 친구가 얼마나 매운지 맛이나 보라며 앞접시에 조금 덜어 준다. 어! 맵다. 정말 맵다. 2단계가 이 정도면 3단계는 얼마나 매울까?

그런데도 매운치킨, 매운아귀찜, 매운갈비찜, 매운떡볶이 같은 매운 것을 먹으려고 줄을 선다. 얼큰하고 개운할 정도의 매운 맛이 아니라 겨울에도 땀을 뻘뻘 흘릴 정도의 얼얼한 맛에 취한다. 마트에도 청양고추맛 꽃게랑, 매운새우깡, 불닭스낵, 못말리는 신짱 매운맛 등 달콤해야할 과자까지도 매운맛이 판을 친다.

왜 매운맛을 찾는가? 경기가 불황이거나 사는 일이 힘들 때, 스트레스가 나를 괴롭힐 때 사람들은 매운맛을 찾는다. 사실 매운 것은 맛이 아니라 통증이다. 혀가 느끼는 건 단맛, 신맛, 쓴맛, 짠맛 이 네 가지 뿐이다. 매운맛은 아픔을 느끼는 통각세포의 몫이다. 아픔의 느낌이 뇌에 전달되면 이 아픔을 진정시킬 진통제 엔도르핀이 분비되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일상에서 흔히 혼내준다는 뜻으로 '매운맛 좀 볼래?'한다. 이때 매운맛은 뜨거운 맛이다. 뜨거운 것은 닿는 순간 화들짝 놀라는 반응이 온다. 그리고 데인 자리의 고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매운 맛은 바로 몸이나 마음에 고통을 주겠다는 뜻이다. '매운 맛'과 '맵다'는 의미가 조금 다르다. 고되고 독할 때 '맵다'라고 표현한다. 우리 민요에 "고추당추 맵다 해도/ 시집살이 더 맵더라"라는 구절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인생의 매운맛을 음식의 매운맛으로 상쇄시켜야 하는 세상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오늘 왠지 매운 것이 먹고 싶다. 사는 게 힘드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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