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광 칼럼위원
김미광 칼럼위원

스위스 어느 거리에서 한 노인이 길에 다니면서 뭔가를 주워 호주머니에 넣었다. 긴 거리를 그렇게 오가며 뭔가를 줍기에 수상하게 여긴 경찰이 그에게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물었으나 그는 별일 아니라고 했다. 경찰은 습득물을 주웠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그에게 주머니에 든 것을 보여 달라고 했다. 노인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은 유리조각이었다. 혹시나 길을 가다가 아이들이 밟아서 다치면 안 되기 때문에 유리 조각을 주웠다는 이 사람이 바로 우리가 아는 스위스의 교육가 페스탈로치 선생님이다.

오래전 어느 학교에 새로 발령을 받았는데 누군가 말하길 그 학교에 가면 ‘페스탈로찌’ 같은 교사가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그를 페스탈로치 선생님이라 한다는 것이다. 요즘 같이 교사도 하나의 서비스 직종이라고 말하는 시대에 페스탈로치 같은 선생님이라니 기대를 안 할 수가 없었다.

그 선생님과 나는 같은 학년을 맡지는 않았지만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눈 여겨 보았다. 소문처럼 성품이 인자하고 좋은 사람이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같은 학년을 맡은 선생님들과 식사를 할 자리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페스탈로치 선생님 얘기가 나왔다. 다들 말하기를 그 선생님 때문에 학생들이 통제가 안 된다고 말했다. 애들을 완전 방임으로 내버려 두기 때문에 애들이 천방지축 온 복도를 뛰어다니고 다른 반에까지 와서 떠들므로 피해가 막심하고 수업시간에 애들이 자거나 말거나 야단치지도 않을뿐더러 조종례도 반장이 대신 한다는 것이다. 엉? 이게 뭔 말이야? 페스탈로친데?

그 페스탈로치 교사의 교육 방식은 ‘방임’이었다. 자율 교육이라는 명분하에 애들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고 절대 간섭하지 않는 것. 그러니 통제를 싫어하는 학생들 사이에서는 페스탈로치로 통하는 것이다. 그 반은 항상 결석이 수루룩하고 성적은 바닥을 기고 애들은 점점 불량하고 껄렁해져갔다. 어쩌다 다른 선생님의 지도를 받을 때면 ‘우리 담임이 괜찮다고 했는데 니가 무슨 상관이냐?’ 고 대들었다.

나는 그처럼 학교생활을 편하게 하는 교사를 본 적이 없었다. 애들 말에 무조건 오케이 였고, 조종례는 물론 청소시간에 임장지도를 하지 않고 교무실에서 느긋하게 차를 마시고 있으니 그 교실은 쓰레기통에다 개판이고 애들은 사고를 치며 다니는데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개인적으로 좋은 사람이었으나 교사로서 교육관은 나와 전혀 맞지 않았다. 나는 그를 ‘개스탈로치’라 불렀다.

통제와 방임 어느 것이 교육에 좋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최소한 다른 학생들이나 학급에 방해를 주지는 말아야하고 학생들의 삶이 좋은 쪽으로 향하도록 이끌어야한다는 것이 내 교육철학이었다. 학생들이 나쁜 방향으로 시야를 틀지 않도록 일일이 통제하고 지도하느라 교직 생활 내내 힘들었던 나는 진절머리를 치며 일찍 명퇴를 했지만 방임으로 일관하시던 그는 아직도 교직에 있는 걸로 안다. 개스탈로치의 ‘승’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초중고 개학 연기로 나는 무척 걱정스러웠다. 학생들은 처음에 개학이 연기되자 뛸 듯이 좋아했겠지만 거의 5개월을 집에서 시간을 보내니 애들은 애들대로 부모는 부모대로 교육을 걱정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이제 조만간 개학을 해서 학교로 돌아가면 교사들은 지난 5개월 동안 교사의 손을 타지 않은 아이들을 집중력 있게 케어하고 보살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완전히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학생들 교육에서는 방임도 좋지만 먼저 학생들의 삶이 올바른 쪽으로 향하도록 지도하고 교사가 먼저 실천해 모범을 보이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다칠까 거리를 오가며 유리 조각을 줍던 페스탈로치처럼 긴 방학 동안 제 멋대로 지냈을 우리 아이들을 위해 학교가 멋지고 즐거운 곳이라는 것을 알려 주고 학생들이 학교에서 마음껏 지낼 수 있도록 자양분 역할을 해주는 우리의 페스탈로치 같은 선생님들이 많이 생겨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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