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누가 없었던 시절에는 잿물을 사용했다. 잿물은 시루 밑바닥에 베를 깔고, 그 위에 볏짚이나 콩깍지를 태운 재를 넣고 물을 부어 아래로 흘러내리게 해서 받았다. 그밖에도 오줌, 보리 삶은 물, 두부순물 등도 세탁제로 사용했다. 개화기 이후 들어온 강력한 세척력을 가진 수산화나트륨을 ‘서양에서 들어온 잿물’이라 하여 양잿물이라 불렀다. 1950~60년대 까지도 농촌에서는 잿물을 사용했다.

몸을 씻을 때는 토란 삶은 물이나 창포뿌리를 말려 만든 가루를 사용했다. 지금도 단오절이 되면 창포 잎과 뿌리를 삶은 물로 머리를 감는 풍습이 남아있다. 이들은 서민들의 비누였다면, 부자나 귀족들의 비누는 조두(澡豆)였다. 맷돌에 팥이나 녹두, 콩 등을 갈아 체로 쳐서 고운 가루를 내어 얼굴을 씻었다. 고급 세정제로 신라 때부터 한말까지 사용되었다. 이 조두를 ‘비노’라고 불렀다고 조선 숙종 3년(1677)에 간행된 '박통사언해(朴通事諺解)'에 나온다. 이 ‘비노’가 ‘비누’로 음운변화된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의 비누는 개화기에 들어왔다. ‘잿물 감(鹼)’자를 써서 ‘석감(石鹼)’이라 불렀다. 돌처럼 딱딱한 고형의 잿물이라는 뜻이다. 1923년 광고에 '별포석감'이 있고, 1938년도 광고에 '美活石鹼'이라고 쓴 옆에 한글로 '미활비누'라고 토를 달고 있다. 한자깨나 쓰는 사람들이 석감이라 했다면 일반인은 ‘사분’이라 했다. 포르투갈어의 비누 Sabão(사버웅)을 일본말로 음역 한 것이다. 지금도 나이 많으신 분 중에는 사분이라고 말한다.

의학자들이 말하기를 인류를 구한 물품 1위로 비누를 꼽는다. 비누가 대중화되기 전에는 전염병이 한 번 돌면 한 도시 단위로 떼죽음을 당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매일 비누로 손발을 씻으면서 감염과 질병 전염을 막을 수 있었다. 질병관리본부에서 발표한 코로나19 예방 수칙의 첫 번째가 ‘비누로 30초 이상 손씻기’다. 손만 잘 씻어도 바이러스를 80%까지 제거할 수 있다니 비누야! 니 참 고맙다.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