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진국 칼럼위원
  • 승인 2020.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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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진국 거제공증사무소 변호사.
석진국 거제공증사무소 변호사.

'동방의 등불'을 쓴 인도의 시성 타고르. 그의 집 하인이 어느 날 아침에 세 시간 넘게 지각했다. 화가 난 타고르가 허겁지겁 달려온 하인에게 고함을 쳤다. "당신은 해고야! 빨리 이 집에서 나가!" "죄송합니다. 어제 밤에 딸애가 죽어서 아침에 묻고 오는 길입니다." 타고르는 그 말을 듣고 인간이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하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깨달았다.

누구에게나 화는 나기 마련이다. 그러면 그 화를 낼까 말까? 인내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 인내를 기르기 위해 먼저 5분 동안 참는 것부터 시작해보라. 그래서 그 시간을 10분, 20분, 한 시간으로 늘여보라. 사람들이 많이 말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인내 즉 참는 것이 과연 좋은 것일까?

어떤 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화가 날 때는 화를 내라! 너무 참으면 병이 된다. 자, 위 두 가지 주장 중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참을 수도 없고 참지 않을 수도 없고…. 그런데 화가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화는 이해의 부족에서 난다'고 틱낫한 스님은 말했다.

운전에 대해 생각해보자. 운전하면서 화를 안 내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자신만의 운전기준을 갖고 있다. "저런 데서 갑자기 끼어들다니" "저렇게 급하게 차선을 바꾸다니?" "저렇게 빠르게…저렇게 느리게…" 그로 인해 자신에게 피해라도 온다면 "개새끼…소새끼…" 욕이 바로 튀어 나온다.

이렇게 사사건건이 간섭하고 화를 내면 누구에게 이로운가? 그 상대방에게 도움이 될까? 나에게 도움이 될까? 보통 상대방에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고 나에게 화가 나니 내가 괴로울 뿐이다. 자! 여기서도 기준과 기대를 놓아버리자.

운전자의 모든 행위에 대해 "내가 모르는 이유가 있겠지…"라고 생각해보라! 형사범에는 '고의'와 '과실'이 있다. 고의는 일부러 하는 것이고 과실은 잘 몰라서 실수로 하는 것. 만일 상대방 운전자의 '끼어들기'가 있었다면 그것은 고의 아니면 과실로 인한 것이다. 만일 과실이라면, 즉 그가 운전에 대한 경험이나 지식이 부족해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걸 잘 모르고 실수로 했다면 또는 깜박 주의를 하지 못하다가 정신없이 그랬다면 크게 나무랄 일은 아니다.

만일 고의라면 어떤가? 그가 운전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충분하고 주의 결핍도 아니면서 갑자기 끼어들기를 했다면 그에게 내가 알지 못하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뒷자리에 임신부가 출산하려 한다든지 응급환자가 있어서 초를 다툰다든지 내가 모르는 이유가 분명 있을 수 있다. 만일 그런 이유를 내가 알았다면 화가 나진 않았을 것이다.

만일 다급함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냥 그렇게 했다면 그 사실을 알 때 크게 화가 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하면, 그렇게 하는 그는 얼마나 불쌍한가? 아무런 그럴듯한 이유도 없이 규칙을 어기는 행위를 한다는 것은 선천적으로든 후천천적으로든 그가 비뚤어져 있다는 뜻이다. 그를 미워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비뚤어진 인간은 동정할만한 불쌍한 사람이 아닌가? 악인은 그 자체가 형벌이다.

생각이 이에까지 미친다면 과연 누구를 미워할 수 있는가? '갑자기 끼어들기'라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 이유는 잘 모른다. 어떤 이유이든 내가 화낼만한 건 없다. 그래도 화가 난다면? 생겨난 것은 모두 사라진다. 화가 나는 자신을 가만히 들여다보라. 그리고 화를 낼만한 이유가 없음을 다시 생각해보라. 흙탕물을 가만히 두면 깨끗하게 되듯 어느새 화가 사라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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