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창수 지세포제일교회 목사.
천창수 지세포제일교회 목사.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것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 6:35)

예수님은 자신을 일컬어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셨다. 신약성경이 기록된 헬라어에는 생명을 나타내는 단어가 두 가지 있다. '비오스'와 '조에'다.

'비오스'는 심장의 맥박이 뛰는 동안 유지되는 우리 육체의 목숨을 가리킨다. 모태에서 태어나 늙어 죽을 때까지 우리 온 몸의 기능이 정상적으로 활동할 동안만 살아있게 하는 것이 바로 이 비오스다.

우리는 이 '비오스'(생명)가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안다. 사람들이 코로나를 불안해하는 주된 이유 중의 하나도 바로 생명을 잃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비오스는 소중하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비오스가 전부인 줄 알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생명에 집착을 한다. 또 어떤 경우는 사는 게 너무 힘드니까 이 생명을 끊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줄 알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비오스가 생명의 전부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생명에는 '조에'도 있다. '조에'는 영적인 생명을 말한다. 코에 호흡이 끊어지면 끝나는 육신의 생명을 넘어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코로나와 주일예배 문제로 정부와 언론들이 교회를 범죄단체 취급을 하는 작금의 상황이 가슴 아프다. 이미 많은 교회들이 정부의 방역시책에 협조해 원격예배로 전환했다. 불가피한 여건으로 현장예배를 드리는 교회들도 있지만, 일반 사회 기관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방역과 위생수칙을 지키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 결과 전국의 5만5000 이상의 교회 가운데 확진자가 나온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하고, 그 마저도 예배 시간에 감염을 일으킨 경우는 이단이나 불건전한 교회를 제외하면 전무하다. 그럼에도 교회의 예배를 범죄시하는 분위기로 여론을 몰아가는 것을 볼 때 통탄할 일이다.

더욱 가슴 아픈 일은 교회의 주일예배를 돈 문제로 해석해 숭고한 예배의 정신을 깎아 내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비오스가 전부라고 한다면 교회의 예배를 이 같은 자본주의의 원리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비오스가 전부가 아니다. 조에의 생명이 있다. 영원한 생명이 있다.

'조에'는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사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풍성한 삶을 누리며 살았다. 하나님과 늘 교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는 근심이나 고통이 없다. 병도 죽음도 없다.

그런데 죄로 말미암아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을 피하여 나무 사이에 숨고 말았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만 것이다. 그 후부터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죽은 존재가 됐다. 성경은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라고 말씀한다. 갓 태어난 어린아이라도 영적으로는 죽은 것이다.

비오스가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영원한 생명이다. 사람이 온 천하를 다 얻었다 할지라도 조에가 없다면 그는 불쌍한 사람이다. 성경에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했다. 비오스의 생명은 호흡이 끊어지면 끝나는 것이다.

예수님은 생명의 떡이다. 조에의 떡, 영생의 떡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시고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는 것이다.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예수님께로 나아가 예수님을 믿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