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봉사 26년 김선옥 '아름회' 회장

"이쪽은 짧게 하고요, 이쪽은 길게 해 주세요."

'아름회' 김선옥 회장이 미용 봉사를 위해 가위를 잡으면 손님들의 주문은 천차만별이다. 그럴 때마다 김 회장의 대답은 한결같다. "예에! 예쁘게 해드릴게요."

김 회장은 손님의 주문도 참고로 하지만 그보다는 자신의 전문가적 안목으로 그분의 얼굴형에 가장 어울리는 형태를 판단해 손질을 해드렸을 때 더 만족한다고 귀띔한다. 미용봉사로 반생을 넘어 살아온 김 회장의 노련한 경험이 묻어난다. 

김 회장 자택 거실장은 감사패·공포패 등 각양각색의 상패들로 자리가 모자랄 정도다. 거제시 자원봉사센터의 계량된 봉사시간만 해도 3799시간.

54년생인 김 회장은 사등면 출신이다. 처녀적에는 객지에 나가 회사생활도 했지만 고향 거제로 돌아와 결혼을 했다.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도 타고난 손재주를 활용하고 싶었다. 미용학원을 등록해 틈틈이 노력을 기울여 미용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후 미용실을 10여년 운영했는데 타고난 솜씨와 감각으로 찾는 단골이 많아 재미있었다.

바쁘게 미용실을 운영하던 어느 날, 남편은 일을 그만두기를 바랐다. 수입은 꽤 좋았지만, 밤늦게까지 끼니도 제때 먹지 못하다시피 하고  종일 서서 일하는 부인의 모습에 남편은 마음이 아팠던 것이다.

미용실을 접고 집안일을 돌보던 중 딸이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했다. 4개월여 입원을 해야 해 보호자로서 병원에 머물다 보니 직업적인 습관으로 환자들의 두발이 눈에 들어왔다. 병중이라 제대로 모발관리가 안돼 보였다. 김 회장은 먼저 손을 내밀었다. 한두 사람 머리를 깎아주다 보니 주위에 소문이 나서 서로 머리를 깎아 달라고 김 회장을 찾았다.

나중에는 아이가 퇴원했는데도 간호사가 부탁을 해왔다. 산소호흡기를 달고 천장만 바라보고 누운 중환자실 환자의 머리를 깎았다. 장기 환자들의 병실도 찾았다. 봉사의 시작은 이렇게 우연찮은 기회에 찾아왔다.

말끔하게 머리를 잘라줬을 때 고마워하고 기뻐하는 모습에 가슴 뭉클한 보람을 느꼈다. 좀더 조직적으로 봉사를 해야겠다는 뜻을 품고 미용사들을 모았다. 사람들을 아름답게 해주는 모임이란 뜻의 '아름회'를 조직한 지도 26여년 됐다.

김선옥 회장이 그동안 받은 각종 감사패와 공로패들.
김선옥 회장이 그동안 받은 각종 감사패와 공로패들.

'아름회' 조직 이후 애광원·선인요양원·사랑의 집 등 거제시 복지시설을 찾아 미용봉사를 하다 경로당까지 발을 넓혔다. 인터뷰 중간에도 미용봉사 일정을 논의하는 전화가 빈발한다.

봉사를 하다 보면 보람도 많은 반면 여러 어려움과 고비도 많았다. 시설을 방문하면 반갑다고 손을 잡고 펄쩍펄쩍 뛰고 좋아해 정이 들었는데 다음에 방문했는데 그분이 안 보이고 돌아가셨다 하면 마음이 아프다. 치매환자의 경우, 미용을 하지 않으려 떼를 쓰기도 하고 심한 경우는 '너희들 돈 벌러 온 게 아니냐'며 욕을 해 대기도 한다. 아름회 회원들은 그런 아수라장 속에서도 웃는 얼굴로 묵묵히 가위를 잡아 왔다고 김 회장은 지나온 시간을 더듬었다.

"애광원 같은 시설에는 육체적으로 힘든 장애인이 많아 누운 상태에서 머리카락을 손 봐야 한다. 그런 장애인은 항상 내 담당으로, 그들과 같이 쪼그려 앉아서 가위를 잡아야 한다"고 말하는 김 회장.

김선옥 회장과 26년간 봉사를 할 수 있도록 묵묵히 기다려주고 도와준 남편 최덕수씨.
김선옥 회장과 26년간 봉사를 할 수 있도록 묵묵히 기다려주고 도와준 남편 최덕수씨.

오랫동안 다져진 미용실력도 실력이지만 궂은 일은 자신이 도맡아 해야 한다는 리더 로서의 책임감이 그를 솔선수범하게 하는 원동력인 듯 싶다.

봉사를 하다보면 발생되는 여러 어려움도 회원들끼리 모여 밥도 먹고 수다를 떠는 사이 어느듯 다 날아가 버린다. 매년 2회 야유회를 가져 회원들이 단합하고 그동안 쌓인 회포도 푼다.

20여년이 훌쩍 넘은 김 회장의 봉사 뒤에는 묵묵히 기다려주고 인정해주는 남편의 배려도 한몫했다. "건강유지 잘해서 앞으로도 좋은 일 많이 하면 좋겠다.우리  집사람이 제일 예뻐"라며 남편 최덕수씨는 애정을 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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