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전놀이는 양쪽에 삼각대 나무 기둥을 세우고 줄을 걸어 가운데에 길이 2m·직경 6㎝의 철봉(鐵棒)을 매달아두고, 20m 거리에서 돌을 던져 쇠봉을 마치는 경기이자 놀이다. 개인 또는 5인 단체전으로 1인 10개씩의 돌을 준비해 1회에 5개씩 궁도(弓道) 방식으로 순번에 따라 돌을 던졌다.

이 석전대회는 기생의 춤과 노래로 흥을 돋우며 명중하면 다음과 같이 기생이 노래를 부른다.

전반전 5개의 석전으로 첫 번째 돌이 명중하면 '하모(何某) 1시(화살矢)초에 관중(貫中)이요', 두 번 명중하면 '하모 2시에 지화자, 지화자', 3중하면 '하모 하시(何矢)에 꽃바라, 꽃바라', 4중 하면 '돈 바라, 돈 바라', 5시가 모두 명중하면 '하모 5시 5중이요'라 하며 기생이 노래를 부르며 덩실덩실 춤을 췄다. 그리고 술과 안주로 권배(勸盃)했다.

조선시대 말엽의 태평성시는 일등에 황소(黃牛)를 대상으로 줬다. 각 읍·면 단위로 널리 보급돼 왔으며, 1980년도까지 거제의 시민행사로 발전했다.

거제의 석전놀이는 1170년 고려 제18대 의종왕이 상장군 정중부의 숭문주의에 반란을 일으켜 거제군 둔덕면 거림리에 유수(流囚)돼 뒷산에 있는 산성(岐城)에는 몽돌을 무기로 소장하고 적병에게 돌을 던졌다는 전설과 지금도 산성 내에는 몽돌이 산재해 있다.

아양 당등산성(堂嶝山城)과 거제 옥산금성(玉山金城)에서도 전쟁무기로 사용한 몽돌이 있다. 무기가 없을 때 돌을 던져서 적을 방어하는 석전 전술이다. 1592년 임진왜란 후부터 군병놀이를 한 것이 오늘까지 전승(傳承)돼 석전의 민속놀이가 되고 개천이나 바닷가에서 이 놀이를 해왔다.

매년 5월7일 옥포대승첩 기념제전의 행사로 해오다가 당등산에 있던 기념탑이 옮겨진 후부터 석전놀이가 차츰 없어졌다.

석전놀이는 거제를 비롯한 해안가에서 유행돼 왔다. 거제에서는 아양·아주 지역과 거제 명진, 둔덕 영등, 남부 다대, 동부 학동, 장목 농소 지역 등지에서 전해져 왔다.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