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수 칼럼위원
김계수 칼럼위원

봄도 겨울도 아닌 어정쩡한 2월, 밤늦게 집으로 들어오는 시간에는 내 편안보다 주변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된다. 겨우내 추위를 이겨내 견고해진 벚나무의 기지개 소리가 키높이로 들려온다. 겨울에서 봄으로 돌아오는, 끝에서 다시 시작으로 돌아가는 동안 우리는 수천 줄의 문장을 써 버리고 이따금 다가오는 현실적 문제를 핑계 삼아 소중한 시간을 함부로 버린 것은 아닌지를 염려한다.

아무튼 계절의 문장인 봄이 다시 새봄으로 돌아오고 있으니 인간은 패배하고 세월만 성공한 것인가. 우리는 온전하게 봄을 맞을 것인가! 산들에 들꽃을 화려하게 볼 날이 오기는 올 것인가 싶다. 당장 내일이라도 봄은 돌아서서 가버릴 것 같은 위태로운 지구 한 모퉁이에 마른 풀잎처럼 연약한 인간들이 코로나바이러스에 떨고 있다. 다시금 지인들에게 던져보는 안부, 그대 무사하신가?

어릴 적 가장 큰 보호막이면서 나를 지키는 효율적인 무기는 '우리 엄마, 아버지'였다. 악당의 무리가 집으로 쳐들어올 때 스위치 하나만 누르면 집 전체가 강한 보호막으로 감싸줘 보호해주던 그 시절 만화영화처럼 엄마는 분명히 강했다. 친구가 부당한 일로 겁박할 때 '우리 엄마한테 이를 거야'라는 한마디로 모든 상황이 종료됐었다. 한 번도 아버지는 싸움 마당에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존재만으로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학교를 졸업하고서도 한참 동안 '우리 엄마·아버지'는 내가 가장 기댈 수 있는 언덕이고 보호막이었으며 최후의 보루였다. 믿음이었다. 동네 앞산만큼이나 큰 품을 가진 아버지의 존재는 쉴 수 있는 집 자체였다. 엄청난 실수 앞에서도 '우리 엄마', '아버지'는 용서해 줄 수 있었고, 선생님이나 다른 어른들이 해결하지 못한 일들도 '원더우먼'이나 '슈퍼맨'처럼 나를 위해 번뜩이는 존재였다. 이런 엄청난 마법 같은 시절이 누구에게나 있었다.

비까지 내리는 어정쩡한 밤, 나를 슬프게 만든 것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바이러스 때문이 아니다. 마치 '우리 엄마'와 '아버지'를 잃어버린 아이처럼 온 세상이 불안에 떨며 봄을 부르지 못하는 어정쩡한 밤, 너무 일찍 피어버린 매화가 아프고, 여리고 여린 개구리 울음소리가 또 아픈 탓이다. 그 푸르고 그리운 땅에 이제 꽃 한 포기 심을 수 없고 나비 한 마리 날아들지 않는 어두운 땅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큰 까닭이다.

인류 최고의 발명품은 도시라는 말이 참 쓸쓸하다. 엄청난 기술개발로 풍족해진 인류를 멸망시키는 것은 인간 자신과 바이러스가 될 것이라는 예언에 내가 딛고 선 이 땅이 언제까지 견뎌줄 것인지 의문이 드는 것이다.

내가 지금 어정쩡한 비를 맞으며 돌아가는 집이 가까이 있듯이, 돌아가지 못할 푸른 땅의 어제도 그리 멀리 있지는 않다. 돌아간다는 것,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인가. 사람이 사람을 용서하고 치료하고 보듬어주는 푸른 땅의 마법들이 존재하는 '우리 엄마', '아버지'의 땅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가.

내 손으로 나의 뺨을 때리고, 나의 종아리를 후려치고, 나의 잘못된 관습을 나무라서 인류의 악한 걸음을 조금이라도 멈춰 세웠으면 좋으련만. 정녕 돌아갈 곳이 없을 때, 우리는 어디에서 어떤 추한 모습으로 사라져 갈지를 참으로 아프게 생각해 볼 일이다.

바이러스 치료백신 개발보다 더 급한 것은 돌아갈 푸른 땅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것에 더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참으로 아프게 다가오는 더딘 봄이다. 그리하여 그대 무사하신가!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