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창수 지세포제일교회 목사
천창수 지세포제일교회 목사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어려움에 처해 있다. 과도한 불안과 두려움이 사람의 정신과 영혼을 힘들게 한다. 옆에 누군가 다가오면 혹시 이 사람이 보균자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먼저 든다. 자연히 모든 활동이 움츠려들게 되고 경제는 위축되고, 여기저기서 못살겠다고 힘들어한다.

모세 당시의 상황도 비슷했다. 이스라엘은 애굽의 노예 생활을 하고 있었다. 애굽인들은 이스라엘을 학대했다. 매일 강제노동을 하게 하였다. 아들을 낳으면 부모의 손으로 그 자식을 나일강에 던져 버리게 했다. 게다가 이런 슬픈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400년 동안이나 침묵하셨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을 버리기라도 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침묵하셨다.

이런 끔찍한 상황에서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은 극에 달했고, 하나님은 탄식하며 부르짖는 그들의 고통소리를 들으셨다. 출애굽기 3장에 보면, 하나님은 그 고통스러운 시대에 이스라엘을 구원할 구원자로 모세를 준비시키셨다. 암울한 백성에게 모세를 통해 소망의 빛을 비춰주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모세에게 나타나셨다.

우리는 종종 환경을 지나치게 중요하게 평가하곤 한다. 그런데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해 낸 모세가 하나님을 만난 곳은 광야였다. 광야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 시대의 구원자로 세워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은 그가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가 이 사회와 이 나라에서 주님께 쓰임을 받느냐 받지 못하느냐 하는 것은 현재 내가 속해 있는 위치와 환경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환경이 아니라 그곳에 하나님께서 계신가 계시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모세는 광야에 있었으나 그곳에 하나님께서 함께 계셨기에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예수님께서 어디를 가시던지 항상 대동하고 다니셨던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갈릴리 호숫가에서 고기 잡던 어부 출신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어부들을 택하셔서 한꺼번에 3천명 5천명을 회개시키고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냈던 놀라운 일꾼으로 사용하셨다.

내가 지금 어디에 살고 있느냐,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환경과 처지가 어떠하냐는 것은 중요한 것이 못된다. 나의 환경이나 교육적인 배경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이다. 모세는 애굽의 왕궁에서 그 좋은 환경에 있을 때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을 받은 것이 아니라 비록 광야에 있을지라도 그가 하나님과 함께 있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셔서 애굽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게 하셨다. 모세는 광야에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하나님께서 함께 계셨다.

모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요셉이 죽은 후 약 400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침묵하셨다. 그러나 이러한 침묵을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활동을 중지하고 계신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런 침묵 중에도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이루고 계셨다.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매우 강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스라엘이 고통 중에 부르짖을 때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내가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내려와 그들을 구원하려 한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항상 숨어 계시기만 하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고통과 근심을 알고 계신다. 부르짖음을 듣고 계신다. 때가 되었을 때에 내려오셔서 구원해주시는 하나님이시다.

모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내가 내려가서 너희를 구원하겠다는 그 소망의 음성을 들었다. 내가 이제 너희의 그 고난의 현장에 들어가서, 그 소망 없는 사회에 나타나서 친히 일하시겠다고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하나님은 결단코 숨어 계시기만 하시는 분이 아니다. 흑암과 혼돈과 공허로 가득 찬 세상 같지만, 때가 되면 하나님은 반드시 나타나신다.

우리의 소망은, 이 사회의 소망은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발견될 수 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비록 광야 같다 할지라도, 거기서 하나님의 구원의 음성, 소망의 음성을 듣고 이 땅에 소망을 주는 모세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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