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노승(老僧)이 절간 마당 중앙에 큰 원을 그려놓고 자신의 제자가 되고자 찾아온 청년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내가 지금부터 두세 시간 동안 산아래 마을을 다녀올 것이다. 내가 돌아왔을 때 네가 이 원 안에 있으면 오늘 하루종일 굶게 될 것이고 원 밖에 나와 있으면 여기서 쫓겨날 것이다."

이 말을 남기고 노승은 마을로 내려갔습니다. 이 노승의 제자가 되고자 했던 젊은이는 정말 난감한 상황입니다. 원 안에 그대로 있자니 하루종일 굶어야 할 판이고 원 밖으로 나와있자니 절간에서 쫓겨날 형편이었기 때문입니다.

두세 시간 뒤 노승이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 젊은이는 하루종일 굶지도 않았고 절간에서 쫓겨나지도 않았습니다. 과연 어떤 일이 있었기 때문일까요? 노승이 떠나고 난 후 젊은이는 한참동안 골몰하다가 마당 한구석에 놓인 빗자루를 들고 와서 노승이 그려 놓은 원을 쓸어버리며 다 지워버렸습니다. 그래서 마당에 그려져 있었던 원이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이제 원이 없어졌으니 원 안에 있는 것도 아니고 원 밖에 있는 것도 아니므로 어느쪽 벌칙에도 해당되지 않게 됐습니다. 눈에 보였던 둥근 원이 사라지게 되자 젊은이는 자유로울 수 있었고 참다운 평안을 누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 인간의 마음속에는 크고작은 원들이 많이 있습니다. 더 많은 재물과 명성·축복을 얻고자 하는 탐욕의 원,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 조문을 다 지켜야 한다고 하는 율법에 대한 강박관념의 원, 억울한 일을 경험하게 됨으로 생성되는 크고작은 원한의 원, 전통과 체면과 권위에 짓눌린 무거운 심사 등 수많은 근심과 걱정 때문에 자유로운 심령이 되지 못하고 늘 무거운 짐을 가득 가득 품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 인간의 내적 현실입니다.

동양의 성현 공자는 '지자요수 인자요산(知者樂水 仁者樂山)'라 했습니다. 문자적 의미는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는 뜻이지만 이 말의 참된 정신은 우리 인간이 세상의 부귀영화에 너무 집착하면서 사는 어리석은 삶의 모습이 아니라 유유히 흐르는 물처럼 늘 변함없이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며 자유로움과 여유로움을 누리며 사는 삶이 진정 지자(知者)의 삶이요 인자(仁者)의 삶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유대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을 하면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 후, 공생애 사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는데 갈릴리 온 지역을 두루 다니시면서 놀라운 이적과 능력을 나타내게 되자(마4:23-24) 갈릴리에 살고 있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해 물밀 듯이 나오게 되는데 그때 산 위에 올라 자신을 찾아온 수많은 사람들에게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산상보훈의 말씀,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 입니다.

이 산상보훈의 말씀 가운데 팔복(八福)에 관한 말씀을 제일 먼저 전하고 있는데 이 팔복의 말씀 가운데 첫번째 주시는 복(福)에 관한 말씀이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5:3)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심령이 가난하다"는 말은 헬라어 '프토코스(Ftocos)'라는 말로 '아주 빈곤하고 궁핍한 상태, 극도의 가난함, 다른 사람들에게 구걸 할 수밖에 없는 가난'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각종 크고 작은 욕망과 허영을 떨쳐버리고 이 가난한 마음, 겸비한 마음, 감사하는 마음, 해맑은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아름다운 사랑을 채워 실천하고자 하는 원대한 비전을 품게 될 때, 그 마음 심연에서 용솟음 치는 정신적 풍요로움과 기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바로 그때 그 심령 속에 참된 천국, 참된 행복이 이뤄진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야말로 분명 문명의 이기(利器)들로 인해 과거와 비교해 볼 때 살기가 훨씬 더 좋아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못살겠다고 아우성치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야말로 상대적 빈곤과 상대적 허탈감을 훨씬 더 많이 경험하는 시대입니다. 이같은 시대속에서 성숙한 시민은 세속적 탐욕의 노예로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거룩한 비전을 마음 중심에 채우며 그 비전을 이 땅에 펼쳐가는 삶이 돼야 하지 않을까요? 이같은 삶이 더불어 살아가는 살기좋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 복된 삶이 아닐까요? 결코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우리 모두가 함께 이 아름다운 꿈을 꾸게 될 때 이 세상은 좀 더 나은 세상, 좀 더 살만한 세상으로 변화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