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윤석 거제시약사회장
고윤석 거제시약사회장

아편이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내고 역사에 깊은 생채기를 남긴 사건은 중국에서 일어났다.

아편을 사용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명의 화타 이야기로 볼 수 있는데, 화타는 '마비산'이라는 마취약을 사용해 수없이 개복수술을 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마비산'의 주요성분이 아편인지 다른 식물인지 정확한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서양에서는 먼 옛날부터 널리 이용된 아편이 중국에서는 꽤 오래도록 알려지지 않은 것은 미스터리 하지만, 더 나아가 아편의 끔찍한 해악과 독성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 중국의 역사에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된다.

영국에 처음 차가 도입된 것은 17세기 초반의 일이다. 동양에서 들어온 이 진귀한 음료는 엄청난 열풍을 일으켰지만, 아열대에서 생산되는 차가 한랭한 유럽 기후에서는 잘 자라지 않았기 때문에 차는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영국의 무역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영국은 천문학적 액수의 적자를 메우기 위해 방법을 마련해야 했는데, 당시 중국의 청 왕조는 식량·음료·의복·공예품 등 모든 면에서 전혀 부족한 것이 없었다. 

결국 영국 정부는 인도 벵갈에서 생산되는 아편을 대량 생산해 수출하기로 결심한다. 담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아편에 불을 붙여 연기를 들이마시는 중국 맞춤 신상품을 개발했다. 하지만 다시 영국으로 유입되는 것은 엄격히 규제하는 등 그 수법은 기발하고 악랄하기 그지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청나라는 정부 고관에서 서민에 이르기까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많은 사람이 아편의 포로가 됐다. 그로 인한 부작용과 해악이 극심해져 몇 번이나 강력한 대책을 새웠지만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아편에 한번 맛을 들인 사람은 그 중독성에 열이면 열 충성스러운 단골이 됐다.

아편 무역 덕분에 영국이 전적으로 손해를 보던 무역수지의 판세도 완전히 뒤집혔다. 청왕조의 은이 끝없이 국외로 유출되며 급기야 국고가 바닥을 드러냈다.

그 상황에서 청의 관료였던 임칙서가 떨쳐 일어나 마약을 규제하는 강력한 정책을 시행한다. 밀수 단속 업무를 하며 영국 상인이 보유하고 있는 1400톤 이상의 아편을 모두 압수, 석탄과 소금물로 분해 처분하는 초강수를 뒀다. 그러나 이 사건을 계기로 영국은 강경책으로 전환해 '아편전쟁(1839~1842년)'이 발발한다.

영국에게는 전혀 대의명분 없는 전쟁이었지만, 청의 입장에서는 명분의 우위에도 불구하고 전력의 차이가 너무도 컸기 때문에 근대 병기를 갖춘 영국군의 엄청난 기세에 눌려 청군은 전쟁 초반부터 바람 앞의 검불처럼 스러져갔다. 

결국 청은 완패했고, 홍콩을 할양하고 거액의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각서에 울며 겨자 먹기로 서명해야 했다. 이어진 1856년 제2차 아편전쟁 등을 거쳐 청은 서구 열강의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으로 전락해갔다.

세계 최강으로 여겨지던 청이 서구 열강에 완전히 항복한 사건은 아시아 전역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었으며 위기감을 느끼게 했다. 

만약 모르핀이 이 세상에 없었더라면, 아니 원자 하나만이라도 구조가 달랐다면 아시아의 역사는, 그리고 더 나아가 세계사는 지금과 완전히 달라지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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